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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 돈키호테의 고향, Consuegra(콘수에그라)풍차마을

Chris Yoon 2021. 10. 21. 04:30

 

돈키호테의 고향, 콘수에그라 풍차마을

Man of La Mancha

 

 

 

스페인 사람들만큼 돈키호테를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거리마다, 광장마다 돈 키호테의 동상이 서있다.

돈 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Miguel de Cervantes, (세르반테스 1547~1616)의 풍자 소설이다.

근대소설의 선구가 되었으며 문장은 스페인의 사실적 문체의 최고로 평가된다.

단순한 풍자소설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을 그린 최초 ·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130KM 떨어져있는 콘수에그라는 풍차마을로 유명하다.
1605년 문호 세르반테스가 발표한 '돈키호테'에서 풍차를 거인이라 잘 못 알고 싸움을 건 장면의 배경지이다.

 

 

이곳은 돈키호테 소설의 배경인 라만차 평원의 전원으로콘수에그라 풍차가 많은 곳이다.

나는 이곳을 오기위해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숨을 헐떡이며 언덕까지 올라왔다.

아래에서 보는 풍차가 돌고있는 언덕은 일품이었다.


돈키호테의 장엄한 이야기는 라 만차라는 스페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는 쉰 가까운 나이에도 군살 없이 골격이 튼튼하고 얼굴이 삐쩍 마른 시골 귀족이었다.

마흔이 넘은 가정부와 스무 살이 채 안된 조카딸과 함께 농사일을 관리하며 살아가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기사소설에 탐닉하게 된다.
당대 유행하던 기사소설에 너무 빠져든 그는 좋아하던 사냥도 그만두고, 책을 사느라 경작지까지 모두 팔아치운다.

며칠이고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책을 읽던 그는 소설 속 이야기들을 모두 현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결국 ‘머릿속 골수가 다 말라’ 미쳐버린 그는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로 마음먹는다.

 

 

옛날에는 모두 풍차방앗간으로 사용을 했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관광상품을 파는 상점으로 쓰인다.

풍차의 모양은 모두 같지만 문위에 쓰인 이름이 다른것을 보면 풍차주인이 모두 따로 있었나보다.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칼과 창, 그리고 얼굴을 가리는 아래 덮개가 떨어져 나간 투구를 어설프게 손질한다. 그리고 당당한 기사로서 ‘돈키호테 데 라 만차(라 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인다. 또 머리는 부스럼투성이인데다 볼품없이 삐쩍 마른 자신의 말에도 ‘로시난테(Rosinante)’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다.
돈키호테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은 같은 마을 농부인 산초 판사(Sancho Panza).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입담 좋고 착한 그는 돈키호테의 충직한 하인이 된다. 산초 판사는 섬 하나를 정복한 후 그 섬의 영주로 앉혀주겠다는 돈키호테의 약속에 솔깃해져 처자식을 남겨두고 험난한 모험의 길에 함께 나선다.
돈키호테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부정과 비리를 바로잡으며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하며 긴 여정을 시작한다. 비록 망상에서 비롯된 다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약하고 상처받은 자에게는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악당으로 ‘보이는’ 상대를 마주하면 불굴의 용기를 발휘한다.
돈키호테가 벌인 우스꽝스러운 소동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는 풍차와 벌인 싸움이다.

평원을 지나던 중 멀리 풍차 30~40개가 나타나자 풍차들을 거인들로 착각하고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든다.

산초 판사가 그건 풍차일 뿐이라며 만류하지만 어느새 세차게 돌아가던 풍차 날개에 부딪혀 로시난테와 함께 나둥그러진다.

 

 

세르반테스는 이곳에서 바람부는 이 언덕에 올라 산책을 하며 돈 키호테를 썼다.그 소설이 근대소설의 선구가 되었으며 스페인의 사실적 문체의 최고로 평가된다.그리고 오늘날, 단순한 풍자소설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을 그린 최초·최고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아, 나 또한 진정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400년 동안 돈키호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화가들에게 돈키호테는 무척 탐나고 매력적인 소재였다.

특히 프랑스 화가며 삽화가인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는 돈키호테가 벌인 갖가지 소동들의 장면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았다.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아연 실색하며 말리는 산초 판사의 표정.

‘기사 돈키호테’가 되기 전, 기사소설에 파묻혀 공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

객줏집 주인에게서 엉터리 기사 서품을 받는 풍경.

산 속에서 고행하는 돈키호테를 구출하기 위한 계책으로, 도로떼아라는 여성이 돈키호테에게 자신을 미꼬미꼰國의 미꼬미꼬나 공주라고 속이고 위기에 처한 자신의 왕국을 구해달라고 하는 장면······.

이 두 화가가 남긴 정교하고 실감나는 삽화와 그림들은 이후 돈키호테가 다른 시각적 이미지로, 조각으로, 설치물로, 영화 속 캐릭터로, 그리고 인형으로 재현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비쩍 마른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 긴 창과 동그란 방패, 앞부분이 동그랗게 패어있는 투구.그 모습은 굳이 그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와 같은 스페인 출신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흥미로운 인물을 새롭게 그려냈다.

 

 

1972년 피터 오툴(Peter O’Tool)이 돈키호테로,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돈키호테의 상상의 연인 둘시네아(Dulcinea)로 나온 뮤지컬 영화 〈맨 오브 라 만차(Man of La Mancha)〉는 큰 인기를 끌었다.

주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으로도 널리 알려진 영화다.

한국에서도 이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이 많은 관객들을 모았다.
돈키호테는 이 밖에 여러 나라에서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하게 다루어졌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교향시 ‘돈키호테’(1897), 프랑스 출신 무용가 마리우스 프티타(Marius Petita)가 안무를 맡고, 오스트리아 작곡가 루트비히 민쿠스(Ludwig Minkus)가 곡을 붙인 발레곡 ‘돈키호테’(1896)는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콘수에그라 풍차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그만그만한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산다.

저런 삶을 관조하며 자란 세르반테스가 어찌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지 않을 수있었겠는가.!


허구의 존재 돈키호테는 스페인 전역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지나쳐 간 기나긴 여정 ‘돈키호테의 길(La Ruta de Don Quijote)’ 곳곳에는 마치 실존했던 인물 같은 그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충직했던 동반자 산초 판사와 함께.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라 만차의 사나이 돈키호테와 함께)

 

 

언젠가 대학후배가 경기도 장흥에 집을 짓고 전체를 화실로 쓴다기에 찾아갔던 적이 있다.

과연 생각했던대로 빛이 잘들고 앞산이 그림처럼 창으로 들어오는 전망좋은 곳에100여평의 집을 짓고 온통 캔바스가 널린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당시 몰두하여 그리던 그림은 라만차의 사나이 '동키호테'였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파렛트와 붓을 달라고하여 한쪽 구퉁이에 물감을 발라 내 텃치를 넣었다.

동키호테의 그림에 한 부분이나마 내 숨결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어렸을적부터 동네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던 나는 끝내 집을 가출까지하며 명문 서울예고를 거쳐 홍익대학을 들어가 자유분방한 예술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오고 잠시 사회에서 산업미술을 하여 돈을 조금만 모으고 다시 화단으로 돌아가겠다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요, 이젠 더욱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렸다.

여기 '라만차의 사나이'에서 돈키호테의 노래중 The Imposibble Dream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중 내가 가장 가슴 절절하게 외우는 구절이 있다.
"모든 기사의 소명은 (It is the mission of each true knight... )
기사의 의무 아니 기사의 특권은 (His duty... nay, his privilege! )
이룰수 없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평생 하나의 꿈을 안고 그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워낙 명곡이라서 버젼도 많고 뮤지칼의 원곡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뮤지컬중 정성화가 부른 버젼을 나는 좋아한다. 외국의 소울이 가미된 버젼보다 정성화의 노래에는 더 비장함이 서려있다. 지금 흐르는 Luther Vandross의 음악 Bar를 잠시 끄고 아래 정성화의 노래에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자. 우리는 오늘도 이룰수 없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있다

 

 

 

 

 

 

돈키호테의 고향, 콘수에그라 풍차마을

Man of La Mancha


Luther Vandross - The Impossible Dream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기 위해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No matter how hopeless
no matter how far
To fight for the right Without question or pause
To be willing to march into hell For a heavenly cause

부당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저 먼 곳에 있는 순수함과 고상함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두 팔이 너무나 지쳤을 때에도 계속하기 위해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별에게 손을 뻗어 닿기 위해
그 별을 향해 가는 것이 나의 소명이네
비록 희망이 없고, 너무나 멀리 있다 하더라도
정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 의문을 품거나 멈추지 않고
하늘의 도리를 들어 기꺼이 지옥으로 향하겠노라

And I know, if Ill only be true
To this glorious Quest
That my heart will lie peaceful and calm
When Im laid to my rest

나는 알고 있네, 이 영광스러운 전투 앞에
내가 정말 진실될 수만 있다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진정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으로 눈 감을 수 있다는 것을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s
I’ll always dream impossible dream
And yes I will reach the unreachable star

그리고 세상은 이로 인해 조금 더 나아지리라
상처투성이로, 멸시당하는 그 한 사나이가
최후의 용기를 다해 분투하여
결코 닿을 수 없는 별에게 닿기 위해서
불가능한 꿈을 나는 언제나 꾸고
그래,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별에게 닿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