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o del Prado
우리의 삶이 헛헛하다고 느껴질때 미술관을 찾아가 하루를 보내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더구나 학창시절부터 미술서적으로만 봐왔던 대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대하고나면 진한 감동이 밀려들며 말을 잊고만다.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 그렇다.
유럽에서는 3大미술관중 하나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다음으로 큰 곳이며 그곳에는 우리가 잘 아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마하' 그림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마하를 대표하듯 고야의 동상이 서있다.
동상은 청동의 고야가 서있고 그 아래 대리석으로 조각한 옷벗은 마하가 누워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 벗은 마하〉(위), 〈옷 입은 마하〉(아래)
1795-1800, 캔버스에 유채, 98x191cm / 1800-1807, 캔버스에 유채, 95x190cm
이 두 작품은 쌍을 이루는 작품으로, 같은 모델을 각각 누드와 옷 입은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내가 미술대학에 다닐 때 가끔 서적에서 보았는데 무척이나 관능적으로 다가왔었다.
같은 사람을 하나는 누드로, 하나는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는 것이 미술애호가들에게는 더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 등으로 불리는 이 여인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마하(maja)’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오래된 책에서는 ‘마야’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스페인어 발음을 잘못 표기한 것이고, 마하가 맞다.
여자의 경우 마하, 남자의 경우 마호(majo)라는 단어는 옷을 잘 차려입고 생김새에 신경을 쓴, 그러나 귀족은 아닌 마드리드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요즘의 스페인어에서는 인상이 좋고 옷도 잘 입고 서글서글한 사람을 표현할 때 마호, 마하라고 하고, 성격이 좋은 사람을 부를 때도 이 단어를 쓴다. 그러므로 고야의 그림에서 ‘마하’란, 멋쟁이 혹은 예쁜 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마하’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이 아닌 것은 알았다. 게다가 이 그림들은 집시 여인, 혹은 베누스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수많은 추측이 있지만 확실히 내려진 결론은 없다.
당시의 세도가이면서 고야와도 친분이 있었던 알바 공작부인(Duquesa de Alba)이라는 가설 때문에 고야와 공작부인 사이의 러브라인이 강조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고 19세기에도 알바 공작부인이라고 하면 스페인의 왕비보다도 작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귀족이다.
그만큼 스페인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것이다. 고야와 공작부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둘 사이의 신분 차이라든지, 둘의 성격 등으로 보아 그 사이가 심각한 관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야가 공작부인을 짝사랑했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공작부인에게 고야는 여러 애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벌거벗은 마하〉는 처음으로 여성의 음부가 그려진 그림이라고 한다. 실제로 원화를 보니 음모 한 올, 한 올까지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옷 입은 마하〉는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실루엣이 드러나 있어서, 어쩌면 더 뇌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야는 이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종교 재판에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재판에서도 누구를 그렸는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델이 누구인지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다.
고야의 '옷벗은 마하'앞에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남성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만큼 마하의 자태는 고혹적이다.나는 미술관을 나와 노천카페로 가서 술을 마셨다. 촬영이 금지되어 촬영을 못한 아쉬움도 있거니와 마하의 노쇄적인 자태가 머릿속에서떠나질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윗 붉은배경의 조각 사진은 프라도 미술관에 들여서면서 입구에서 좌측편 로비에 마련되어 있는 작품인데 프라도 미술관에서 유일히게 찍을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관람객들은 아쉬워서 그곳이 포토죤이 되었지만 작품성으로 봐서도 무척이나 좋은 대리석 조각이다.
내가 누구였던가? 감성이 샘물 고이듯 밀려들던 청소년시기부터 조각가의 꿈을안고 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한 청년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앞에서 사진을 셀프로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파인더를 검색해 보니 나외에 또 다른 인물이 보였다. 뒤를 돌아다보니 한 눈에 봐도 잘생긴 - 마치 몸매가 날렵하고 민첩해 보이는 늘씬한 몸매의 투우장의 투사나, 아니면 무대에 서서 스페니쉬 기타를 연주하며 정열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관중을 휘어잡는 가수같은 사내가 한쪽손을 들고 찡긋 웃으며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로 오더니 물었다.
- Where are you from? 너 어디서 왔니?
South Korea라고 대답을 하고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호세였고 포도주를 파는 직업을 갖고있었다.
왜 그리 사진을 많이 찍느냐고 사진작가인지 아니면 모델이냐고 묻기에 젊은시절엔 조각가였고 지금은 포토그래퍼인데 내부에선 사진을 못찍게해서 이것만 찍는다고 하며 허탈해 했더니 그렇다면 더 찍으라면서 자신도 카메라 앞에서서 포즈를 취한다. 나는 호세와 함께 흰대리석의 조각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몇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저 작품은 고대시대의 신화를 바탕으로한 神의 이야기를 형상화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대를 살면서 고대의 神들이되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촬영을 마치고 열렬히 뜨겁게 hug(허그)를 했다. 그리고 미술관을 나와 노천카페로 가서 오후의 뜨거운 햇살아래 앉아 맥주를 마셨다.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스페인 회화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미술의 걸작 등 유럽의 다양한 회화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건물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후안 데 비야누에바에게 자연과학박물관의 설계로 의뢰한 것이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의 건축은 나폴레옹 전쟁 중에 중단되었다가 1819년 완성되어 왕립회화관으로 공개되었다. 왕궁 및 에스코리알에 있는 그림들을 모아 이 소장품을 확장시킨 이사벨 2세가 추방된 뒤 1868년 프라도 국립미술관이 되었다.
소장품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와 부르봉가의 군주들이 수집한 미술품으로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다른 부속 건물들이 지어지고 수집품도 더욱 늘어났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프란체스코 데 고야, 호세 데 리베라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우리가 잘 아는 고야의 '마야'가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주소 : Calle Ruiz de Alarcón 23, Madrid (34 91 330 28 00)
대중교통 : 지하철 방코 데 에스파냐(Banco de España) 역, 아토차(Atocha) 역, 안톤 마르틴(Antón Martín) 역
개관 시간 :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일요일 · 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 (1월 6일, 12월 24 · 31일은 오후 2시까지)
휴관일 :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입장료 : 14유로 (65세 이상, 일반 관객 폐관 2시간 전 7유로, 25세 이하 학생 무료)
- Photo / Copy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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