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오분간 - 나희덕

Chris Yoon 2021. 10. 9. 19:39

 


五分間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 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게 아니라
휜칠한 청년하나 내게로 걸어 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생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 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이십오년전,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가 눈송이처럼 바람에 지던 초여름 어느 날을 기억한다

토요일이었다. 관악산 기슭 예술인 마을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아서 길렀다

그 아이가 세살 무렵, 세발자전거를 타고 떨어진 아카시아 꽃길로 마중을 나왔었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순간, 아늑하게 정신이 썰물 빠져 나가듯하며,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동안을 바라 보고 있었다

내 아이 같지않고 먼 별나라에서 내려 온 아이 같았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젠 훤칠한 청년이 되었다

학업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하여 집을 나갔다

첫 출근을 하던날,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새 구두를 신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는데

버스 정류장이 있는 잠실 사거리까지 배웅을 해줬다

이른 아침, 한적한 교보문고앞 광장에서 함께 갈 친구를 기다리고 서있는 아들아이는

앞으로 닥칠 앞날에 조금은 긴장되고 불안해 보이는 완벽한 청년이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오분간, 나는 이 詩를 떠올리며 되뇌이고 있었다

 

 

- Chris Nicol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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