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경치 / 심재휘
-낯선 마을의 달
겨울과 봄의 사이 또는 낮과 밤의 사이에서
생각하면 나는 어느 쪽에 서 있었던가
낯선 마을의 초입에서 어느덧 달이 뜬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도
젊은 사람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
알 수 없는 저수지의 깊이에 관해서
차고 기우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돌리는 깡통 속의 불은
제 목숨으로 속없이 둥글게 빛난다
허나 제자리에서 오래 돌수록 밟음도 지치는 것
그러면 타다 만 불씨들을 발로 비벼 끄듯
엉덩이에 붙은 검불을 털어내듯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 것이다
마침내는 어둠에 빚지게 될 터이다
그랬던 것이다 저 낯선 마을의 달이
어둠에 깃들어 사는 것처럼
나는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을 하나가 불현듯 내게로 다가와
나를 슬쩍 슬쩍 지나갔던 모양이다
그랬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산수유꽃을 찾아 길을 따라 들어온 것이 그만 낯선 마을로 들어서고 말았다.
길목마다 산수유가 구름처럼 피었고 집집마다 빈 집처럼 조용한데
들녁 먼 곳에서는 배나무, 사과나무 가지치기에 바쁘다.
나는 배밭으로 들어가 배꽃 사진을 몇 장 찍다가 그냥 오솔길을 따라 걷기로했다.
낯선 마을, 또 낯선 마을... 가도가도 길은 이어진다.
이렇게 봄이 낯설고 조용하구나..
길가에 차를 멈추고 들녁 위에 떠있는 낮달을 본다.
- Poem : 심재휘의 바람의 경치중 '낯선 마을의 달'
- Photo : Andy Lim
- Copy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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