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열일곱 살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열일곱 불행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검은 연발총이 숨겨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그럼 네가 사라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친구여, 넌 이 거리를 기억하겠니?
아니지, 넌 볼쇼이 카레트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볼쇼이 카레트니라는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사람이
그의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린 곳이니 말이야.
그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
너의 열일곱 살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열일곱 불행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검은 연발총이 숨겨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그럼 네가 사라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 무정부주의자 [無政府主義者]
국가 권력 및 사회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무정부 사회를 주장하는 사람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가 무정부주의자 [無政府主義者]들의 거리였다면 나의 거리는 '종합운동장 탄천을 건너면서, 잠실 새내역에서 부터 잠실 사거리 일대와 롯데 빌딩이 있는 잠실사거리, 사거리를 건너면서 향군회관, 장미아파트, 주공고층 아파트, 미성아파트, 진주아파를 끝으로 올림픽공원까지였다.
이곳을 사람들은 주로 잠실이라 부른다.
나는 나이 서른아홉에 이곳, 잠실로 흘러들어와 서른다섯해를 살았다.
그때만해도 빈터가 많이 남아있던 잠실은 높은 건물이 없었다.
몽촌토성은 버려진 옛유물로 농민들이 채소를 경작했고 석촌호수엔 녹조현상이 진행되며 악취가 풍겼다.
버려진 땅, 잠실은 그저 버려진 모래땅이었다.
이곳, 잠실땅이 이웃 성남이나 미금같은 경기도 땅을 발전시키기위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빈터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잠실 주공아파트 작은 평수들은 탄천을 지나며 새마을시장을 끼고 연탄을 때는 낮은 아파트로 빼곡히 들어차고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로또로 이름이 났다. 이어서 주공 고층아파트, 장미, 미성, 진주가 차례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결정되면서 종합운동장과 몽촌토성엔 운동경기장과 해외 선수들을 유치시키기위해 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고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조각공원이 되었다.
각처에서 잘 생긴 나무들은 모두 뽑혀와 공원에 심어지며 장식했고 좋은 환경이 이루어지자 새들이 날아왔다.
백로와 왜가리가 물가에 집을 짓고 부화를 하며 날아다녔고 이들은 때맞춰 대기업 롯데가 관리하게된 석촌호수를 날아다니며 하늘을 수놓았다.
나는 몽촌토성과 석촌호수의 중간에 살면서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새떼를 보며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조각을 했다.
석촌호수를 잠자리가 날아다니다가 여생을 다 보내고나면 떨어져 죽었고 새로운 건축물 대리석틈에서도 잠실의 토박이 뽕나무가 싹을 틔워 냈다.
그런 환경속에 마흔에서 일흔셋이라는 나이를 보냈다.
병원치료를 마치고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감각이 없는 우측 발로 느낌으로 운전을 하며 집으로 오는 길.
옛집, 아파트 재건설 공사현장을 지난다.
- 나는 이곳에 살때가 정말 좋았어. 서른 아홉에 들어와서 일흔살이 넘어서 재건축을 한다고 이사를 갔어.
이곳을 떠나고 아프기 시작했고 나의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
나는 한숨지으며 옆에 앉은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 이곳에서 그냥 살다가 죽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그렇게도 반대를 했었는데 이 공사가 다 끝나고 새 아파트가 들어설때쯤그때까지 내가 살아서 다시 돌아올런지 몰라.
아! 꿈에보는 거리. 잠실.
나는 신호등이 켜져서 대기하는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거리가 또 있을까!
30년간을 보고, 걸어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찍으며 살았던 동네.
나는 죽어서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잠실 개발사
오늘날에는 한강 이남, 즉 강남에 해당되지만 원래는 한강 이북이었고 행정이나 생활권으로도 송파구가 아닌 광진구와 맥을 같이 하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잠실 지역은 역사적으로 한강 이남의 광주 고을이 아닌, 한강 이북의 양주 고을에 속해 있었다. 구한말까지 현 광진구 및 잠실 지역을 관할하던 면의 이름도 고양주면(古楊州面)이었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양군에 편입되어 현 광진구 및 성동구 동부 지역과 함께 뚝도면(纛島面)으로 편제되었다가, 1949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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