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드라마 '작별(作別)', 그리고 '인간극장'

Chris Yoon 2022. 5. 30. 01:03

 

요즘 나는 T.V.드라마 한편에 빠져있다

고전 드라마를 재방영하는 채널에서 편성한 드라마인데 시간을 지켜서 꼭 본다.

잘 나가는 대학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암으로 시한부 삶 선고를 받고 인생을 정리하면서 아내와 세 딸, 그리고 사위들, 부모와의 관계(우리나라는 혈연관계가 늘 중요하게 따른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입장, 당사자들 주인공 한진희의 받아드리지 못해 분노를 표출하다가 어쩔 수없이 받아드리는 암투병 과정, 아내 역 윤여정의 울부짖는 대사로 3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50대 신경외과 의사를 통해 삶의 가치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작별은 정확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1994년 6월 13일부터 1994년 12월 27일까지 방영된 57부작 SBS 월화드라마로 김수현 작가의 극본과 곽영범P.D.가 연출을 맡았었다.

그러니까 거의 30년전의 드라마다.

그렇기때문에 극중 인물과 거의 같은 한진희의 얼굴과 윤여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이 드라마를 볼 적에는 마흔일곱살로 딱 그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벌이었다.

 

그때 나는 좋은 음악을 찾아 자료를 수집, 저장해두고 듣는 취미를 갖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T.V.에서 귀에익고 내 취향에 적격인 음악을 한 곡 들었다.

흑인영가였던 이 노래는 Mickey Newbury(미키 뉴버리)에 의해 부활되어 기도와 사유 그리고 삶의 시련과 고뇌를 노래로 읊조리며 살다간 그의 온 삶을 말해주는 듯 하여 이젠 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노래이다.

(노래는 끝에 소개하기로한다.)

 

 

아무튼 나는 이 드라마를 매일본다. 30년만에 다시보는 드라마는 젊은시절에 볼적엔 암투병을 해가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여자의 애틋한 사랑을 보며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보았는데 이젠 상황이 다르다. 내 나이가 인생을 많이 경험했고 나 역시 암에 걸려 암투병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드라마에 감정개입이 많이되고 대사 하나하나마다, 주인공의 행동하나하나 까지 나를 닮아있다.

그래서 걸핏하면 가슴이 북받치고 눈물이 솟구친다.

 

큰누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와 '내가 요즘 잠을 한 숨도 못잔다. 너 재산정리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한대에 백만원씩 하는 주사있다더라. 그것맞고 병고쳐와. 그리고 슬픈 드라마같은것도 보지마.' 했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감정이입 [感情移入]이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봐서는 안된다. 이건 병치료에 좋지않다.

그러나 너무 나의 이야기같아서 안볼 수가 없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던 때, 즉 30년전만해도 암에 걸렸다하면 암은 불치의 병, 그리고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사실상 많이 죽었다. 그러나 이젠 의학과 화학요법도 많이 발전하여 암치료를 받고 많이들 산다.

내 친구들 이야기를 해야겠다.

작년부터 암에 걸린 친구가 나까지 다섯명이다.

그중 제주에 있는 장영준은 간암에 걸렸는데 삼성의료원에서 간을 3분의 1을 떼어내고 항암치료는 안받고 살고있다.

88올림픽 호돌이 작가 김현은 위암에 걸려서 상당부분을 위절제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식도가 늘어나고 역시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세종시에 있는 후배는 전립선암으로 겨우 지팡이로 의지하고 걷지만 산책도하면서 그럭저럭 지낸다.

땅끝마을 강진에서 판화를 하는 후배역시 대장암치료를 받았는데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고도 작품생활을 계속한다. 모두 그럭저럭들 살고있다.

젊어서 한때 자신들의 영역에서 한 몫들을 해내며 시대를 앞서갔던 우리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단 말인가!

서글픈 일이다. 세월은 초가을의 햇살같이 짧다.

 

 

All my trials (나의 시련)

Oh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
You know your daddy's bound to die
But all my trials, Lord soon be over


Oh if life was something that money could buy
The rich would live and the poor would surely die
All my trials, Lord soon be over


Too late it's too late my brothers Too late but
don't you cry All my trials, Lord soon be over
Oh the river Jordan is nighty cold
It chills the body but it warms the soul
Oh all my trials, Lord soon be over

 

 

오 어린 아들아 울지 마라
아빠는 죽어야만 한단다
하지만 나의 시련은 곧 끝날거야

인생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부자들은 살고 가난한 자들은 유순하게 죽어갈텐데
이렇게 나의 시련은 끝나는 것을

너무 늦었다네, 너무 늦었어 형제여
너무 늦었지 그러나 울지 마라
내 모든 시련은 끝났으니

요단강은 차갑지
강은 몸을 떨게 만들지만 영혼을 따뜻하게 해준다네
이제 내 모든 시련은 끝이 났다네

 


Mickey Newbury - All My Trials

노래를 다운받으시면 M.P.3.로 전환되고 음악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 - 인간극장 '봄비의 가수 박인수의 '봄비, 그 후'

 

1970년대의 봄비의 가수 '박인수'를 아는가?

큰 키에 서구적인 얼굴과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없었던 음악성이 뛰어난 한국 최고의 소울(soul)가수’였다는게 그를 설명하기로는 안성맞춤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때였다. 흑백 T.V.로 쇼프로를 보던 나는 얼어붙은듯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야구선수같이 큰 키에 검정슈트를 입고 봄비를 노래하는 저 가수는 누구인가?

봄비라는 노래는 신중현이 작곡을 하고 수많은 신중현 사단의 가수들이 모두 한번씩 부른 노래였다.

그래서 버젼도 많았다. 그런데 박인수가 부르고나서부터는 완전히 '봄비'는 소울이 되어버렸다.

리메이크로도 이 노래 만큼 여러 버전을 가진 곡도 드물다. 그때로선 매우 드물게 샤우팅(shouting, 록의 상징적 창법으로 굵고 강하게 내지르는 발성)을 했던 박인수 목소리가 제일 먼저 꼽힌다.

‘봄비’ 작곡 작사가 신중현과 가수 박인수의 인연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어느 날 낮 신중현이 음악연습실로 훤칠한 키의 박인수가 '자신을 한번 테스트해달라'며 나타났다고 한다.

신중현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소울음악을 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박인수는 그날 밤 미8군 클럽무대에 설 수 있었다. 백인클럽이어서 흑인들은 문에 기대어 노래를 훔쳐들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음에도 몰려들었다. 박인수 몸짓 하나 하나에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신중현은 박인수를 서울 신촌 연세대 앞 사무실에서 ‘봄비’를 1주일 연습시켰다. 후렴부분에서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뽑는 대목에선 공연장이 떠나갈 만큼 인기였다고 한다. 박인수가 어릴 적 미군기지촌에서 자라 그곳 무대에서 봤던 모습들을 되살린 것이다. '박인수가 섰던 그 무렵 공연장은 국내 첫 소울무대였다'고 신중현은 자서전을 통해 회고하고 있다.

그후 박인수는 템프테이션스(The Temptations : 1960년부터 활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5인조 그룹)의 ‘My girl(마이 걸)’, 오티스레딩(Otis Redding : 미국가수, 1941년 9월 9일~1967년 12월 10일)의 ‘Duck of the Bay(덕 오브 더 베이)’ 등을 불렀고 흑인들이 울고 갈 정도로 절창이었다.

 

 

건강이 안좋았어도 미국으로 가서 그는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에서 노래를 불렀다

단기기억상실증으로 11년간 노인요양병원에서 노년을 보냈던 '봄비'의 가수 박인수를 KBS 1TV '인간극장'을 통해 다시 보게된것이다. '인간극장 봄비 그 후'편이다.

'인간극장'에서 박씨는 30여년 만에 아내 곽복화씨, 아들 진서씨와 재회하고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11년 동안 지내던 요양원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부평초 였다. 6·25전쟁 때 이남으로 와 떠돌다 춘천초등학교를 2년간 다녔다. 그는 1970년 발표한 ‘봄비’를 시작으로 1992년 번안곡 ‘해 뜨는 집’까지 11장의 음반을 냈지만 췌장암후유증, 단기기억상실증, 파킨슨병 등으로 음악활동을 쉬었다. 요양시설에 있으면서 10년간 잘 움직이지 못했다. 2002년 동료가수들이 치료비를 돕기 위해 연 자선콘서트에 겨우 나타난게 전부다.

그랬던 그가 몇 년 전 싱글음반을 냈다. ‘해 뜨는 집’ 이후 22년 만이다. 2013년 11월 17일 밤 서울 홍대 앞 상수역 베짱이홀에서 펼쳐진 ‘앙코르, 박인수와 친구들’에서 신곡 ‘준비된 만남’ 음원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박인수와 친한 재즈보컬리스트 김준이 만든 곡이다. 박인수가 1년 5개월 만에 취입했다. 혼성 4인조 그룹 해리티지, 바리톤 박선기 서울예대 지도교수가 힘을 보탰다.

2014년 1월 미국 뉴욕에선 한인회 초청콘서트무대에도 섰다. 투병 후 첫 라이브공연이었다. 뉴욕은 박인수에게 특별한 곳이자 제2의 삶이 시작된 곳이다. 전쟁고아로 12살 때 미국으로 입양, 뉴욕 할렘가(맨해튼 북쪽의 125st지역)를 맴돌다 소울 음악을 익혔다.

그는 이혼했던 옛 아내(곽복화)와 2012년 봄 40년 만에 재결합, 건강이 회복돼 다시 일어섰다. 가족과 음악 선·후배들 도움으로 재기한 그는 그해 6월 서울 홍대 앞 재즈클럽 문글로우(Moon Glow)에서 ‘박인수와 함께 하는 솔의 만남-어메이징 그레이스’에 섰다. 몸이 완전치 않아 주위사람 도움을 받아 무대에 서는 토크콘서트 형식이었다.

그러나 건강이 다시 나빠져 필리핀에 있는 메디컬마사지 허봉현 전문의 도움으로 한 달 여 현지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덕분에 필리핀에서 세부 한인회밴드와 공연까지 했다.

2012년 4월 박인수 사연을 소개한 KBS 1TV ‘인간극장’ 방송 후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졌다. 투병 중인 박인수와 가족이야기가 담긴 것이다. 아내 곽 씨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를 털어놨다. 박인수는 미국입양 후 귀국했으나 정 붙일 곳이 없었던 외로운 신세였다. 두 번의 결혼실패 등 힘든 삶을 이어온 그는 천성적으로 슬픈 영혼을 가진 가수였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두 번째 신혼생활을 시작한 노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인수가 가수로서 재기에 나선 모습도 전파를 탄다.  ‘준비된 만남’이라는 신곡도 선보인다.

내가 이프로를 보면서 혼자 가슴이 벅차오르고 울컥하면서 감동을 받은건 그동안 췌장암후유증, 단기기억상실증, 파킨슨병 등으로 음악활동을 쉬었고 요양시설에 있으면서 10년간 잘 움직이지 못했던 그가 대중앞에 서면 아직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아무리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자신이 좋아하는것은 무의식중에 튀어 나와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당신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직도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미 당신은 젊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젊다고 생각하는 순간 많이 늙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 젊은이들과 많이 생활과 작업을 해왔다.

내 생애 동안 젊은이들을 위해 내가 겪었던 고뇌와 뼈저린 삶의 고통을 들려주고, 내가 젊은 시절 보며 고통과 사유[思惟]를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건 그들(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내가 걸어왔던 길을 증거하는데 있다.

 

 

박인수의 봄비 스마트폰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