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 20대 대통령 취임일이다.
나는 솔직한 마음으로 오늘로서 가슴에 쌓인 응어리라던가, 아무리 털어내려해도 털어지지않고 오히려 달라붙는 티껌블같은 것들을 털어낸듯 속이 후련하다. 지난 5년간 나는 무척 힘들었다.
나의 잘못이 아닌 옳지않은 대통령을 모시고 사느라고 고생이 많았던 샘이다.
처음엔 그가 사내다워보이는 면목도 있어보였고, 또 조*, 임종*등 함께 찍은 사진이 나돌며 잘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이 약간은 선동적으로 다가와 유혹도 받았고, 나는 그를 안찍었지만 젊은이들이 뽑아줘서 그래도 설마 자신들의 앞길을 생각하고 보는 눈이 있겠지... 하며 부정적이던 마음도 긍정적으로 돌리며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부터 나라는 시끄럽고 집값은 올라 그가 지명한 국토부장관 김**는 매일 청문회에 올랐고 심지어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어이없고, 해서는 안될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사진 설명 :: 광화문 집회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아버지를 따라나온 아이, 이 아이가 자라 역사를 이야기할때쯤 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워하기를. 그러나 지금도 변명을하며 자신의 합리화를 찾는다.
퇴임식에서 하는 이야기도 촛불시위에 얼마나 부흥했는지 생각해보겠다고... 본인이 5년간 저지른 과오를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 5년간 380조의 국가채무가 늘어나 1000조 원을 돌파하고, 가계빚만 해도 1800조가 넘어가는 시대에 도래했다. 젊은 층의 '빚투'와 '영끌' 그리고 폭등하는 집값으로 인한 가계빚이 1800조가 넘어가는 현재 가계빚은 경제 위기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노인은 노인들대로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는일없는 노인들에게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물렸다. 그러나 이젠 집값이 오르면서 전국구로 세금폭탄은 확대되었다. 종합부동산세, 보유세, 재산세, 등 이름만 다르게 집을 보유하고있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뜯어갔다.
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다.
서울의 각구마다 나와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하야시키자는 설문지가 돌며 서명을 받고있었다. 나는 비슷한 연령대의 초로에 든 남성들에게 왜 나오셨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 나는 이제 정년퇴직을 하고 수입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몇 십년째 살고있는 집에 세금폭탄이 나옵니다. 구청에가서 물어보니 우리도 정부에서 시키는대로 하니 모른다는거예요. 내가 처음 이사올땐 주변엔 아무것도 없던 집인데 내가 지금 살고있는 것과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세금을 내기위해서 빚을 얻어쓰고 있습니다. 세금을 못내겠으면 이사를 가라는데 몇 십년을 살면서 사는 방법과 주변 지형에 습관이 들었는데 어디를 가라는 겁니까?. 원...빌어먹을 정부... 그들이 하는 말들은 내 입장과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았다.
젊은이들은 영영 집을 장만할 수 없고 나도 재건축으로 밀려나 45년간이나 살던 집을 나와서 이주금으로는 갈 곳이 없었다. 뿐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감언이설로 구직난해결이라는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이 되고 한 일이 무엇인가?
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을 채용하지 않았고 생각다못한 젊은이들은 요식업이나 카페, 스포츠센터 등 자영업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코로나19악재로 모두가 문을 닫고 전세금마저 날렸다.
그 비싸고 자리가 없던 명동머저 모두 빈가개로 나와서 텅 빈 공간들이 밤이면 유령의 집 같다.
이런 판국에 1년에 이천만원을 기준으로하던 금융소득을 천만원으로 낮춰서 노인들이 근근이 지급받는 금융소득 이자에 건강보험료를 올려 한달에 70만원씩을 지불하라는 고지서를 보내고있다.
일년에 천만원 금융이자라면 한달에 팔십삼만원이다. 그것을 가지고 노인들이 어떻게 생활비, 병원비를 다 대며 생계를 꾸려가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얼마전, 아내와 **상호라는 제 3금융권 은행에 간일이 있다. 제1금융권과 달리 이자소득이 2.5%대로 높아 노인들이 주로 몫돈을 넣고 이자를 받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 시대의 잘못된 현실을 목격했다.
- 주민등록 앞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은행원은 큰 소리고 귀가 안들리는 노인에게 이야기를 한다.
- 몰라. 생각이 안나. 그러면서 노인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힘들게 꺼내어 보여준다.
이 시대는 너무 가혹하다. 자신의 주민등록 번호도 기억을 못하는 노인에게 금융소득으로 무거운 세금을 떼고있다. 기껏해야 노인이 맡겨놓은 돈이 얼마나될까? 사회생활을 끝내면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액수일것이다.
그에 대한 이자는 금융소득이 아니다. 그의 평생 일한 댓가인 노인 생활비이다. 그런데 금융소득이라고 세금을 물리다니.
그러면서 정부는 코로나19 대책 지원금이라고 몇 차례 지원금을 나눠줬다. 나는 전 국민이 받을때 한번을 받고 자격이 안된다고 못받았다. 그런데 대통령 아들은 받았다.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경우 해당이되어도 '너는 받아서는 안된다고' 만류를 하며 받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다른 국민에게 양보를 했어야지. 자격도 안되는 순번을 앞으로 끌어 올려서 그렇게 꼭 받아야 했을까?
그리고 소위 영부인이라는 김**의 태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나? 국빈으로 참석한 해외원정길에서 공식일정을 빠지고나와 쇼핑을 하다가 길을잃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을 파파라치에게 걸려 찍힌 그 영상은 영부인이 아니고 얼마나 천박하고 쇼핑중독에 걸린 평범이하의 아줌마의 모습으로 보여주었던가! 그리고 청와대에서 홈쇼핑으로 구입했다는 그 어마어마한 양의 옷값을 공개하라는데 왜 공개하지 못하고 저토록 뱃장을 부리면서 퇴임하는 날까지 뭉게려드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지난 5년간 양의 껍질을 쓴 녹대에게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들을 뜯어 먹힌 꼴이었다.
대한민국의 제 20대 대통령 취임일
대한민국은 제 20대 새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어야한다.
자꾸 트집을 잡고 테클을 걸며 심지어 공갈협박까지 해서는 안된다.
열린 정치를 하겠다고 청와대를 나와 용산 집무실을 만든다는게 뭐 그리 테클을 걸 일인가!
오히려 '그동안 정치를 잘 못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 사욕이 많았고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조*, 추**, 김**, 강**를 장관으로 지명한 것도 사람은 모두 끼리끼리 만난다고 저의 모자란 판단이었습니다.
사과문이라도 낭독해야 될일 아닌가!
새로 취임한 대통령 윤석열은 다를 것이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굽히지않는 판단력과 두둑한 뱃장을 우리는 보았다.
그는 사시를 아홉번이나 낙방하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 넉넉한 사람이다.
윤석열은 사실 충남 선비집안의 대대로 내려오는 파평윤씨 양반집안의 명품, 금수저집안이다.
어린시절부터 선비수업을 받으며 제대로 자란 인품과 시대가 바뀌면서 공부만해서 신분상승을 한 자들과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나는 이번 기회에 미국 25대 대통령 케네디와 윤석열을 비교해 보려한다.
윤석열과 케네디는 묘하게도 닮은면이 있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1917년 5월 29일 매사추세츠 브루클린의 보스턴 외곽 83 빌 스트릿( Beals Street )에서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조셉 P.케네디 Sr(Joseph P. Kennedy Sr) 와 박애주의자이자 사교계 명사인 로즈 케네디(Rose Kennedy (nee Fitzgerald)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할아버지인 PJ 케네디는, 매사추세츠 주의원을 역임했다. 케네디의 외할아버지이자 이름을 딴 존 F. "허니 피츠" 피츠제럴드( John F. "Honey Fitz" Fitzgerald )는, 미국 하원의원을 역임했으며 보스턴시장으로 두 번 연임했다 . 그의 조부모 4명은 모두 아일랜드 이민자의 자녀들이었다.
메사추세츠 브루클린의 저명한 케네디 가문 에서 태어난 케네디는 1940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 해군 예비역에 입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동안 그는 태평양 전역에서 일련의 PT 보트를 지휘했다 . 케네디는 PT-109의 침몰에서 살아남고 동료 선원들을 구조한 덕분에 전쟁 영웅이 되어 해군 및 해병대 훈장을 받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케네디는 저널리즘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후 미국 하원 에서 노동계급 보스턴 지역을 대표했다.1947년부터 1953년까지. 그는 이후 미국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매사추세츠 주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그리고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역사상 제일 젊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
윤석열은 1960년 12월 18일 생이다.
윤석열의 아버지는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의 설립 멤버인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어머니는 강릉 최 씨 최종구의 딸 최정자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결혼 후 퇴직하였다.
윤석열의 고향 출생지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이다.
본관은 파평 윤씨, 서윤공파 35대손으로 뼈대있는 양반가문의 자손이다.
학력은 대광 국민학교 졸업, 충암중학교, 충암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이다.
원래는 서울대 심리학과에 뜻을 두었으나 법조인이 되는게 낫다는 부친 윤기중씨의 조언을 듣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오랜기간 사법고시에서 연거푸 떨어지다 9수 끝에 1991년에 3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3기가 되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윤석열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1996년 춘천지방 검찰청 강릉지청을 거쳐 다음해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1999년 김대중정부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동하게 되며 검사프로필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1999년 김대중정부시절 경찰실세였던 박희원 치안감을 뇌물수수혐의로 철두철미하게 수사하여 하루만에 자백을 받아내기도했으나 2002년에는 사표를 내고 잠시 1년간 변호사생활을 하지만, 적성에 맞지않아 검찰에 복귀하였다.
2003년에는 참여정부의 안희정을 구속수사하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현대자동차 비자금사건을 맡기도 하는등 검사프로필을 만들게 된다. 2008년에는 BBK특검에 파견검사로 참여하고 특검종료후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장으로 가게된다.
2010년 대검찰청 중수2과장을 거쳐 2011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을 맡아 요직을 담당하게 되며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이 되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가고 2016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가 되어 지방에 머물기도했다.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지명되어 합류하게 되었으며 2017년 문재인의 임명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다.
2019년에는 문재인이 윤석열 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하게 되어 검찰총장에 취임하게 된다.
제43대 검찰총창이었으며 서울 중앙지검장으로 등용되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하며 승승장구한 검사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7월 16일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서 2020년 말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검찰총장 정직 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며 2021년 3월 3일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 박탈하려는 여권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하여 2021년 3월 5일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하였다.
2021년 3월에 검찰총장 사의를 표명하며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2021년 6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고 2021년 7월 30일 국민의 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에 자신의 선거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본인의 첫 선출직 선거를 제1 야당 후보로서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나서 국민들은 내심 원하는게 있었다.
대장동 재수사를 원했고 586명의 정치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뭐 그리 정치인은 많아서 하는일 없이 새정부에 방해공작을 하느라 바쁜가!
정치인들의 봉급은 다 누가 주는 것인가? 그것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 아니던가!
정치인의 숫자를 반으로 줄여야한다.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안다면 정치인들은 새정부에 방해공작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5년간 문재인정부가 저지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않기를 바라며 새정부에 아낌없는 찬사와 축하를 보내야 할것이다.
나는 내일부터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에 대해서 기억의 창고에서 자료들을 꺼내며 글을 써보려한다.
내가 처음 케네디를 알게된 것은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어느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을 한 신장 186cm 장신의 군살이 안붙은 양복 핏이 더할 나위없이 좋은 미국 사상 최연소자 대통령. 당시만해도 오락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들이 케네디의 머리스타일을 자주 거론했던 핸섬한 헤어스타일의 잘 생긴 대통령.
그는 젊고 멋있는 최연소자 대통령으로 많은 신화와 업적을 남겼다.
샅샅이 풀어내며 재미있고 흥미있게 써보려한다.
우리의 20대 대통령 윤석열에게 기대를 하면서.
아마도 이 어려운 시대, 난세(亂世 / troublous times)에 헝클어진 실을 풀어내듯 잘 해 낼 것이다.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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