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어떤 시위 - 공광규

Chris Yoon 2022. 5. 1. 01:03

 

 

어떤 시위                 공광규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갓나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 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공광규 시집 『 담장을 허물다 』,《창비 》에서

 

 

 

 

 

푸른 5월의 시작이다.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있다.

일년중 나무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바로 5월이 아닐까!

몇일동안 나는 내가사는 아파트 베란다앞의 메타세콰이어나무가 푸르러지는 것을 문을열고 한참씩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우며 푸른 색을 더 해간다.

내가 송파구청으로 찾아가 일인 시위를 해서 심은 캐나다 단풍나무 가로수에도 긴 겨울을 보내고 새싹이 돋았다,

뿐만이 아니다. 베란다 한켠에 두었던 알로에 화분에서 긴 꽃대가 올라왔다.

이십년동안 알로에를 길러오면서 꽃을 보는건 처음이다. 아니... 여지껏 알로에 꽃은 처음 본다.

아말리스도 꽃대를 밀어올리며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것들의 시위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화분앞에 앉아 꽃삽을 들고 마른흙을 부수고 물을주었다.

 

5월은 항암치료 5차가 시작된다.

항암치료는 내 無言의 시위이다.

좀 더 살고싶다는 내 無言의 시위...

그동안 항암치료 4차까지 받아내느라 지난 겨울부터 봄을 지내며 나는 무척 힘들었다.

빈혈, 거식증, 식욕저하, 온몸이 쑤시며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새 새벽이와도 온 몸의 통증은 그치질않았다.

5월에 시작되는 항암치료 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고왔다. 시험관으로 다섯개나 채혈을 했더니 빈혈이 심하고 시력이 극히 나빠져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베란다에서 주방까지 걸어가는동안 온몸은 무중력상태로 구름위를 걷는듯 발바닥은 아무런 감각을 못느낀다. 그래서 수족관의 긴 꼬리 열대어가 헤엄을 치듯 아주 천천이 걸어다닌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넘어지면 안된다.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젠 많이 좋아졌다. 피부색도 많이 돌아왔고, 식욕도 늘고, 모든게 차츰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심하게 움직이면 심장이 뛰고 숨이 가쁘고 주저앉고 싶을정도로 힘이든다. 그럴때면 심호흡을 해서 내자신을 안정시키며 스스로 묻는다. '나는 괜찮은가? 언제 나의 심장을 에워싼 비정상적 섬유성 단백질은 제거되고 나의 아밀로이드 증세는 완전히 사라질것인가?...

 

윗 詩만 읽으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건 왠일일까?

그랬다. 한때 뉴욕에서 일을 할때, 불르크린에 아파트를 얻어 매일 뉴욕현지인들의 생활을 사진을찍고 E-Mail을 써서

국내의 본사에 전송을 하는것이 일이었다.

그것도 국내시간을 계산해서 본사의 직원들이 퇴근하기전에 보내려면 아침에 늦잠을 잘 수도 없고  새벽일찍 일어나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전송을 했다.

그리고 콘프레이크 한 잔에 에그스크렘볼을 먹고 나와서 타임스퀘어로 갈까? 브로드웨이로 갈까? 망서리면서 전철을 탔다. 운이 좋은 날은 사람을 잘 만나서 촬영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런날은 햄버거 가개로 가지않고 한국관으로 가서 육개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시절... 고단하고 힘들었다.

어쩌면 공광규시인의 詩처럼 시위라도 하고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은 고단하고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시위를 할 정도로 바꾸고 싶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시위를 해야할 때이다.

나는 조용히 시위를 하고있다. 나는 좀 더 살아야한다고. 빨리 치료되어 건강해져야 한다고.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다시 뛰어나가 여행을 다니며 건강하게 가는곳마다 음식을 사먹고, 잠을 자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웃어야 한다고.

 

밖에는 초록빛 나무들위로 비가 내린다.

나무들은 조용한 시위를 하고있다.

더 푸른 가지를 만들고 위로 치솟으며 자신을 키워나갈 거룩한 시위이다.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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