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하면 아파트숲과 카페가 연상되는 혼탁한 도시공간이지만,
나는 잠실하늘에서도 날아가는 새떼를 본다.
그리고 겨울바다와 섬들, 호수와 연못을 그리워하며 때때로 바람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파도와 밀물도 응시하고 미끼가 있는 풍경도 만나고 밤의 메아리도 듣는다.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 일대는 원래 5000년전부터 백제시대의 선조들이 살아온 명당터였다.
옆에는 한강물이 흐르고 땅은 얕으막한 평지라서 수렵과 목축을 하기에 좋았으며 들에는 열매들이 가득하여 늘 배고프지않게 지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움집터들이 모여살만한 부락터였다.
그리하여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터를 잡고 모여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잠실이라고 이름붙여지면서 무와 배추를 경작하고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길렀다.
60년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었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올림픽을 준비하며 배추와 무우를 경작하던 몽촌토성이 다시 모습을 갖추고 그곳은 올림픽공원으로 거듭나며 올림픽을 치루고 해외작가들이 기념하기 위한 야외조각공원을 겸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에 잠실로 흘러들어와 살림을 차렸다.
내 나이 서른아홉,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면서 한쪽에서 세면을하고 또 한쪽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 먹고 또 한쪽에서 잠을 자고일어나 다용도실에 달린 쓰레기통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문을 잠그고 전철역으로 걸어나와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간편한 아파트문화에 길들여졌다.
잠실의 벚꽃.
내가 어렸던 시절, 서울에 봄이오면 멋쟁이들은 동대문시장 포목점에서 봄맞이 한복을 해입고 종로거리를 걸어 창경원으로 전차를 타고 벚꽃놀이를 갔었다. 창경원 벚꽃나무 아래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고 동물원도 구경하고 보트도 탔다.
그러다가 여의도로 벚꽃놀이는 옮겨지고 멀리 진해까지 안가도 벚꽃을 볼 수 있게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잠실이 벚꽃단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탄천을 건너서 종합운동장앞 올림픽아파트단지부터 시작하여 주공고층아파트, 장미아파트, 미성아파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앞의 진주아파트까지 어느새 제법 나이가 들어가는 아파트들이 관록을 자랑하면서 입주때 심었던 벚꽃나무들이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되었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벚꽃길이 좋아했다.
젊어서는 회사출근하랴, 늦게 귀가해서 잠자랴 벚꽃이 피는줄도 몰랐었는데 어느새 나이가 들다보니 밤에도 베란다문을 열고 내다보면 눈덮인듯 피어난 구름같은 벚꽃위에 나는 서있었고 바람이 불면 나비떼처럼 벚꽃잎들이 휘날리면서 밤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러면서 나도 한해, 한해... 나이를 먹었다.
공터가 많아 동춘서커스가 들어와 천막을치고 공연을 하다가 떠나고 오전에 좌판 시장이 열렸다가 저녁이면 천막을 걷고 돌아들갔다.
그곳에 몇년후 잠실사거리가 생기더니 세계에서 몇째 안가게 높은 126층 빌딩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빌딩숲으로 변하면서 롯데에서 호수를 관리하게 되고 녹조현상이 일던 석촌호수도 되살아나며 전철역도 세개나 생겼다.
잠실땅은 나에게 지상낙원이되었다.
눈을뜨고 일어나면 카메라를 들고나와 올림픽공원과 석촌호수를 날아서 건너다니는 해오라기들을 찍고 목이 마르면 롯데 쇼핑몰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보고 배가 고프면 국수를 사먹고 영화를 보았다.
나는 잠실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새와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붉은해가 솟아오르는 하늘을 날며 마음껏 비상을 했다가 나무그늘에서 날개를 접고 쉬고...
참으로 행복했다.
어느 날,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재건축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강의 모래를 파서 그대로 지었기때문에 부식되지도않고 벽엔 금도 가지않은 아파트를..
단지 층을 높이고 세대수를 늘리면서 대단위 현대식주거공간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의논들이었다.
나는 깊은 수심과 고민에 빠져있다가 이마에 붉은 천을 두르고 뛰어나갔다.
내가 맡은 역할은 비상대책 위원장.
내가 무엇을 안다고 비상대책 위원장이 되었을까?
내가 사는 아파트엔 유명인사들이 많았다. 건축가, 법관, 세무사, 사업가... 그들은 나를 위원장으로 만들었다.
- 모든 일들은 우리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사진만 찍고 글만 써주십시요.
나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머리에 붉은천을 두르고 마이크폰을 들고 외치며 아파트단지를 돌면서 북을 치고 주민들에게 호소를 했다.
그러면서 경찰서로 나오라는 출두명령서를 두번이나 받았고 결국은 경찰차에 실려서 경찰서까지 다녀왔다.
그래도 나는 투쟁하며 저항했다.
마침내 내가 살던 아파트는 철벽의 높은 울타리가 둘려쳐지고, 내가 40년간 머물던 건물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땅은 블로도져로 밀리며 파헤쳐졌다.
아파트가 헐렸다는 소문이 뉴스에 실리면서 서울의 인근 아파트들은 일제히 전세가격 올리기의 단합에 들어갔다.
이주비를 받아가지고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남한산성 아래에 전철이 닿는곳으로 옮겨가 비좁고 추운대로 3년을 지냈다.
그렇게 집없이 3년을 살면서 토지세라는 명목으로 재산세를 일년에 오백만원씩을 물었다.
이번에는 정부와 줄다리기끝에 어렵사리 시공을 한다고 첫삽을 떴는데 문화제가 나왔다고 작업중단에 걸렸다고 한다.
- 잠실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파기만하면 마구 문화제가 나오고있다
- 서울 잠실**아파트 재건축현장 6세기 백제, 신라 문화제 다수 발견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잠실 **조합은 지난달부터 전문업체를 선정해 공사현장에서 문화제 정밀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있다. 다음달 말까지로 예정한 정밀발굴 결과에 따라 향후 사업의 방향성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현장 공사 부지 내 총 84개 굴착 지점 가운데 북동쪽과 남쪽 중앙부의 36개 지점에서 삼국시대 수혈(주거지나 무덤등으로 쓰인 구덩이), 구상유구(배수로 역할을 하는 원형도량), 주형(기둥구멍)등 백제 한성기와 6세기 신라문화재 다수가 확인됐다.
뉴스거리가 없던 매스컴은 앞다투어 기사화시키며 뉴스를 만들어 보도했다.
아무 관련이없던 부동산 신문에서도 떠들어댔다.
- 그 아파트 고급스럽게 올라간다더니 이제 완전히 물건너갔군요.
-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그곳은 빈 땅으로 남겨놓았으면 좋겠어요. 아파트 건설은 고덕쪽으로 옮겨서 보내구요.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을 하는 철없는 시민들이 밉살스러웠다.
해당 조사는 지난해 11~12월 전체 잠실진주 면적 11만2558.5제곱미터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굴착이 시시된 84곳 중 조사 지역 북동쪽과 남쪽 중앙부를 중심으로 36개소의 지점에서 백제 한성기와 6세기 신라에 해당하는 문화층이 확인됐다.
하지만 잠실진주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측은 이와같은 일각의 예상이 기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사업과 공사 일정을 마련하면서 이런 상황을 충분히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이에따라 조합측은 3~4월중 문화재 신고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 내 일반분양을 진행한 후 2025년 6월에 새단지를 준공한다는 종전에 목표일정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태어나 나의 노력으로 처음 집을 사고 내가 35년간을 살아온 땅, 나의 집.
사람들은 그것이 단순한 나의 집을 떠나 나의 생명의 원천이었고 내 정신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까?...
프랑스 노래중에 Qui A Tué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라는 노래가 있다.
'루시엥 모리스 Lucien Morrisse'의 자서전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의 철거민 마을같은 프랑스의 재개발 지역에서 할머니가 자신만의 자그마한 정원을 지키기 위해 반대를 하다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을 돌이키며 추모하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Michel Polnareff - Qui A Tué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é seules restent les pensées
et dans tes mains il ne reste plus rien
qui a tué grand-maman, est-ce le temps
où les hommes qui n'ont plus l' 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u silence à écouter
des branches sur les arbres,
des feuilles sur les branches
des oiseaux sur les feuilles et qui chantaient
qui a tué grand-maman, est-ce le temps
où les hommes qui n'ont plus l' 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e bulldozer a tué grand-maman
et changé ses fleurs en marteaux-piqueurs
les oiseaux pour chanter, ne trouve que des chantiers
est-ce pour cela que l'on te pleure?
qui a tué grand-maman, est-ce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 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에
햇살은 빛나고 새들은 노래하고
언덕에는 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었지
어느날 불도저가 오더니
그 언덕을 밀고 지나갔어
불도저는 할머니도 떼밀었지
그리고 꽃들을 굴삭기로 파 엎어 버렸어
황폐해진 언덕
새들은 노래를 그치고
그 땅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네
그곳에 새로운 도시가 생겨났지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네
누가 할머니를 죽게했나?
세월인가?
아니면 더 이상 여가를 보낼 시간이 남지않은
사람들이었나?
세월은 흘러가고 기억만 남았네
그러나 아직 내 귓전엔
그날의 굉음이 들린다네
잊을 수 없는 그 날, 5월의 소리도.
Qui A Tue Grand Maman
1. Michel Polnareff - Qui A Tue Grand Maman
2. Yiruma - When The Love Falls
3. Louis Choi - When The Love Falls
4. Yiruma - When The Love Falls (Raining Ver.)
6. Min Chae - Qui A Tue Grand Maman
7. Yiruma - When The Love Falls (String Ver.)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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