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내가 살던 집 I

Chris Yoon 2022. 1. 30. 00:30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 패한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을하며 35년간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나라는 우리의 국토를 되찾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하던 1948년에 나는 태어났다.

 

대문밖으로는 큰 호두나무가 서있고 하루종일 햇빛이 잘드는 집이었다

바깥을 내어다 볼 수 있는 큰 유리문들이 일곱쪽 잇대어 있고 그 위로는 작은 유리문들이 얹혀있듯이 오래묵은 나무로 된 갈색 문창살들이 곱던 집이었다.

일본사람이 살다간 집, 동네사람들은 그 집을 적산가옥이라고 불렀다.

다다미가 곱게 깔려있고 큰 방 한 쪽에는 작은 꽃무늬 무늬가 잔잔한 미닫이문의 오시레가 있었다.

일본사람이 살던 그 집을 어떻게 우리가 살게되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그 집에서 처음 시작되는 기억은 다섯살 무렵부터이다.

걸음마를 채 떼지못한 나는 저 다다미방 위에서, 유리창이 달린 마루로 기어다니며 놀았을 것이다.

그리고 걸음마를 떼고나서부터 마당으로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내딛었을 것이다.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마당은 온통 키 큰 꽃나무들로 우거져있었다.

어른키보다 훨씬 큰 바위가 몇 개 서있고 그 옆으로는 석류나무가 봄만되면 작은 왕관같은 붉은 꽃을 피워 여름이면 주먹만한 석류를 달고서있었고 키 큰 노란꽃들이 여름내내 피어있고 점백이 붉은 나리꽃들이 봄마다 피어나 각종 나비들을 불러모았다.

담장가에는 키가 커서 하늘을 찌를듯한 측백나무가 몇그루 둘러 서있었다.

바깥세상은 아직도 전쟁의 폐허였다. 허물어진 건물에는 총탄자욱이 선명했고 집안 구석구석에는 도망가던 패잔병들이 버리고간 탄창들이 가끔 나왔다.

상이군인들과, 양공주와, 철수하지 않은 미군들과,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드리워진 세상.

마당에서 혼자놀던 나는 성큼 대문으로 들어서는 외팔이나 다리가 없는 거지들에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며 뛰어들어오곤 했다.

그럴적마다 할머니는 아이가 놀란다고 야단을 치면서 뒤주에서 보리쌀을 퍼서 동냥을 줘보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파마머리에 하이힐을 신고 은행을 다니던 큰 누나는 어두운 밤길이 무섭다면서 외출할때는 꼭 나를 데리고 다녔다.

고등학교를 갓들어간 형은 동네 쪼모래기들을 모아놓고 팔씨름을 시켰는데 항상 나를 끼워넣으며 은근히 내가 이기도록 만들었다.

내 위로 일곱살이 많은 작은누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어찌나 예뻣던지 집앞을 지나다니는 남학생들이 늘 기웃거렸다.

그들은 나를 불러 누나에게 전해달라며 사각으로 꼭꼭 접은 편지를 몰래 쥐어주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할머니는 마당에 석류나무가 있으면 그 집 딸이 바람이 난다면서 석류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래도 작은누나는 타고난 미색때문에 연말이면 전교에서 열리는 성탄연극제에도 뽑혀나가고 계속 뭇 남학생들의 관심을 불러모으며 노래도 잘하고 책도 많이읽고 연애편지도 잘쓰는 문학소녀로 성장해갔다.

 

 

 

나는 이런 환경속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자랐다.

타고난 내성적인 면도 있었지만 내가 여덟살이 되던해, 아들을 못 낳는 숙부님댁으로 양자를 보내야한다는 할머니의 결정을 누가 감히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의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이되어 꽃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적마다 어린 놈이 청승을 떤다며 어른들은 나무랬다.

나는 국민학교 2학년때 전학증을 떼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섰다.

세월이 흐르고 내머리가 희끗해질 무렵,

오랜만에 누나집에 놀러간 내게 작은누나가 이야기했다.

- 우리 옛날에 살던 집, 한번 가볼까?

그동안 우리는 살기에 바빠서 우리가 살던 옛집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나와 누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옛동네를 찾아갔다.

그러나 옛주소를 들고 찾아간 그 집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변해있었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