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대포항에서 윤필립
비오는 대포항에 외롭게 혼자 앉아 본 일이 있는지
설악에서 걸어나와 질척거리는 대포항을 찾아
선술집 목로에 앉아 본 일이 있는지
집어등 켠 오징어배의 출항을 보며
억척같은 어부의 삶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배가 먼 바다로 나가면
그 찬란한 선박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혼자 눈물지어 본 적이 있는지
선술집 주모가 놓고가는 소주 반 병과
해장국을 뜨겁게 목구멍으로 흘려 넣으며
목메어 본 적이 있는지
선술집 유리문에 흘러내리는 빗소리와
방파제에 몰려와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동시에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대포항 선술집 목로에 앉아
서울로 전화를 하면
아무도 받지않고 길게 떨어지던 빈 신호음을
혼자 귀에대고 오래오래 들어 본 적이 있는지
20년전 일이다
비가 오는 대포항에서 밤바다를 보며 선술집 목로에 밤늦도록 앉아있었던 일이 있다
찔금거리는 눈물 탓인지 오징어배의 집어등이 유난히도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삼십촉 전구가 켜진 남루한 회벽에 기대앉아 밤바다를 보며 죽음을 떠올렸다
"아주머니 소주 반 병만 주세요."
소주 반 병, 무슨 의미였을까?
굳이 한 병도 아닌 소주 반 병의 의미는.
고작 서른해를 채우고 떠나려는 미완성같은 내 인생이 마시다 말은 소주 반 병과 같았다
"자시다 반 병만 놓고 가구려."
무심하게 소주 한 병을 가져다주는 주모는 의식적으로 나의 자살을 만류하고 있었다
그날, 소줏잔에는 오징어배의 불빛과, 삼십촉 백열등의 흐린 불빛과, 바다에 일렁이는 불빛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후, 20년.
그 아픈 상흔은 딱지가 져 가라앉을만 한데 비가 오는날은 또 도진다
몇일전부터 비가오려는지 온 몸이 쑤시며 어깨가 끊어질듯 아프더니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더위를 피해 거실에서 잠을 자다 빗소리에 잠을 깼다
여전히 꿈속에서처럼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감고 있었다
동해바다의 파도소리와 빗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들리고 있었다
나의 의식은 이미 동해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비내리는 속초, 바닷가, 대포항의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옷을 주워입고 참치횟집으로 나왔다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참치 한 마리가 누워있다
그렇다. 푸른바다를 길길이 뛰어놀던 저 참치처럼
나의 푸르디 푸른 젊은날은 이젠 죽었다
'- 그의 自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天國으로 가기 爲한 기도 - 윤필립 (0) | 2021.11.30 |
---|---|
蓮 (0) | 2021.11.30 |
Paris Montmartre Sacré Shaq Cathedral Hill ( 파리 몽마르뜨 언덕 샤크레쾨르 성당에서) (0) | 2021.11.30 |
2013 새해의 기도 - 윤필립 (0) | 2021.11.30 |
우리들의 완전범죄 - 윤필립 (0) | 2021.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