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哀傷 윤필립
나는 이 겨울을 꼼짝않고 방에서 지냈다.
미열과 나즉한 기침으로 지성을 자부하며
꽃가루병을 즐겼던 사치스런 불란서의 예술인들처럼
시름시름 허리를 앓으며 병을 즐겼다
연극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진 한 해의 끝에서
피에로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은 제 길을 찾아 조용히 불어가는데
이 겨울 나는 누워서 허리를 앓아가며 지냈다.
이따금씩 친구로 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기다리며
카메라 렌즈를 닦고 가방을 챙기며
펼쳐놓았던 트라이포드를 접어들고 나가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밖은 조용히 바람이 불고
때로는 눈보라가 휘날리기도 하다가
유리창엔 하얀 성애가 끼기를 반복했다
그럴때면 예전같이 옷을 벗고 자동셧터를 걸어놓고
카메라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고
얼어붙은 검은 가지들이 서로 뒤엉키며 숲이 되어도
나는 나와 무관하다는듯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 동물처럼 지난 추억만 꺼내 씹으며.
긴 겨울을 시름시름 앓으며 누워서 지냈다.
아, 잔인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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