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잠실(蠶室)' 소고(溯考) I

Chris Yoon 2021. 11. 9. 00:09

여기 잠실, 125층 고층 건물이 들어선 땅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잔다

진눈개비처럼 적시던

땀에 젖은 육신을 눞히면

잠실땅은 그 옛날의 섬처럼

한 척의 배가 되어 둥둥 떠다닌다

잠실...

누에 蠶, 집室...

누에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고

큰 누에 하나가 내 등을 타고 오른다 어둠속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 속에서

누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나도 한마리 누에가 되어 고개 흔들며 천정을 쳐다보곤 했다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며 구름이 지나간다

그 옛날 이곳은 뽕밭이 펼쳐져 있었고

지나가던 한강물이 흘러들어와 석촌호수를 만들었다

뽕잎은 기름이 흐르게 반들거리며 푸르고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는 집집마다 들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더니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술집과 쇼핑상가가 문을열고 커피와 빵을 판다

 

잠실(蠶室),... 누에 蠶, 집 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엔 누에들의 교미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든 내 등 위로 오늘도 누에 한 마리 기어 오른다

 

尹馝粒

 

 

 

 

 

강건너 구의동 테크노마트 쪽에서 보는 잠실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장관이다.

건물들이 서로 튀지않고 균형을 맞추며 아름답고 강물에 비치는 불빛들이 요란스럽지않게 곱다.

흡사 미국의 불루클린쪽에서 바라보는 맨허턴같다.

 

나는 오늘 그동안 잠실에 대하여 내가 알고 느껴왔던대로 필력해 보려한다.

내가 잠실에서 살아온지 어언 35년, 여태까지 살아온 날중에 반생을 보냈다.

그러니 그동안 잠실의 변천사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것이다.

처음 내가 잠실에 들어올때가 서른살 중반이었다.

그때만해도 살기 바쁜 나이로 직장생활을 할때라 전철을 타고 회사를 출근해야했고 전철역 이름도 지금의 잠실나루가 아닌 성내역이었다.

성내역,

남한산성에서부터 내려온 물줄기가 성내천을 이루며 흘러와 한강으로 합쳐지는 곳이라 성내역이라 붙였을것이다.

 

잠실(蠶室)은 조선 세종 때 국가에서 세운 누에치는 방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몽촌토성에는 몇백년전부터 남아있던

뽕나무 뿌리에서 싹이 터나오는곳이다.

1966년부터 시작된 한강종합개발계획은 1975년까지 계속 되었지만,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대회를 준비하면서 거의 1988년에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신천동이다.

조선시대의 신천(新川)은 잠실도의 북쪽을 흐르던 샛강에서 나온 이름이다.

잠실의 아래로 흐르던, 사실상의 본류였던 강은 개발계획에 따라 메워지고 그 일부가 잠실 4거리의 석촌호수로 남게 되었다.

석촌호수는 처음 내가 보았던 1980년대 초까지는 그저 큰 웅덩이로 방치되어 푸른 이끼가 낀 물로 고여있었는데

당시에는 흙 제방으로 겨우 모양만 갖춘 상태였다. 위쪽을 흐르던 한강 본류(원래는 지류)에도 토사가 매우 많아 하폭이 좁았지만 개발계획과 줄기찬 모래 골재 채취로 하폭이 넓어지고, 하도변의 모래톱도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 한강의 골재 채취는 아파트 건설붐으로 1988년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대 신천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할 무렵 공터에 조성된 ‘새마을 시장’이 발전하여 지금의 서울에서도 유명한 신천의 먹거리 골목,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다.

원래 잠실은 배가 드나드는 나룻터였다.

그렇다면 모래와 진흙벌판에 뽕나무밭이 즐비하던 잠실이 언제부터 이톡록 불야성을 이루게 되었을까?

 

 

 

롯데 월드타워

잠실하면 예전에는 나룻터와 뽕나무밭이 유명했겠지만 지금은 뭐니뭐니해도 125층 롯데 월드타워 건물이 유명하다.

가히 잠실의 랜드마크가 된 롯데 월드타워는 세계의 고층건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건물이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언제 이토록 우뚝 솟았나?

처음 내가 잠실로 들어와서 신접살림을 차렸을때만해도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좀 더 일찍 잠실로 들어온 주공 고층 아파트만 있을뿐 허허벌판에 물웅덩이 같은 석촌호수만 악취를 풍겼었고

가끔씩 동춘서커스단이 들어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펼치다 갔으며 임시 큰 장이 열려서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나가

구경을 하기도 했다.

잠실사거리를 지나는 방이동만해도 큰 건물은 하나도없고 임시로 대지를 임대받은 카센터들이 많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압구정에는 현대백화점이, 잠실에는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이 앞 다투듯 생겨났다.

그때까지만해도 잠실 롯데마트 옆에는 거의 잠실 인근을 독식하다시피했던 한양유통센터가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잠실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잠실 사거리는 날로 복잡해졌고 교통량도 늘었는데 125층 롯데 월드타워 건설이야기는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롯데 백화점 건너편의 공터에 롯데의 마천루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성남 비행장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항로라서 허가가 안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잠실 4거리가 너무 교통량이 많아서 125층 빌딩이 들어서면 교통이 마비될까봐 허가가 안난다고도 했다.

그러나 롯데기업의 힘은 대단했다. 롯데 월드타워는 보란듯이 차근차근 건물이 쌓아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차 마천루의 모양을 갖추어갔다. 1996년의 일이었다.

 

롯데 월드타워의 공사는 하루하루 하늘을 찌를듯 높아지면서 아래층은 영업을 벌써 시작하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마무리 공사를 했다.

그런데 이 공사가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의 앞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날로 올라가는 공사가 위험하다느니, 공사장의 먼지가 날아온다느니 불평을 했지만 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마천루가 자못 신기하고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밤에도 불을 밝히고 공사하는 어둠속의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이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완공될때까지 카메라를 내 거실 책상위에 두고 한 장 한 장 찍어 나갔다.

 

 

사람들이 걱정했듯이 잠실사거리는 복잡해졌다.

출퇴근 시간이면 천호동 방면에서 부터 강남으로 나가는 차들이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했다.

자동차의 행렬은 밤이되어도 그칠줄 몰랐다.

그리고 매년마다 외국의 화약전문가를 초대하여 불꽃놀이를 하면 롯데타원 빌딩을 중심으로 잠실일대는 초만원을 이루었다. 불꽃놀이는 전 서울국민의 구경거리였고 도로는 발디딜 틈도없이 인파로 들끓었다.

그리고 매캐한 화약냄새가 나의 거실까지 몰려왔다.

 

여름날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면 나는 반바지차림으로 롯데 타워빌딩으로 가서 모밀국수를 사먹고 갤러리로 가서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빈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 돌아왔다.

길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면 롯데타워는 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서있었다.

그만큼 나는 어둠속에서 빛나는 혼잡스러운 도시풍경을 좋아했고 그 도시, 잠실을 사랑했다.

그러나 잠실은 도시의 풍경만 존재하는것은 아니었다.

 

 

 

도시속의 자연 - 석촌호수

 

내가 잠실로 들어올적만해도 녹조현상을 보이며 악취가 나던 석촌호수가 롯데 월드가 들어서면서 호수 물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롯데 어드벤춰를 만들고 호수 물의 정화를 시작했다.

곳곳에 정화시설을 갖추고 물을 움직이므로 호수를 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호수는 나날이 맑고 푸르러졌고 호수주변에는 수초식물들이 자라고 어린 물고기들이 몰라보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들이 찾아왔다.

올림픽공원의 해자와 호수에서 해오라기들이 석촌호수를 오가느라 잠실의 하늘을 날아다녔다.

나는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보면 하늘을 날아가는 해오라기들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내 삶도 행복해졌다.

 

석촌호수에는 우리가 보기 어려웠던 놀이동산이 생겨났다.

호수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매직캐슬을 짓고 자이로드롭, 아트란티스 등 40여종의 다양한 놀이시설이 생겼으며,

매일 오후 2시와 오후 7시에 대규모 판타지 퍼레이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곳에 가면 멀리서부터 젊은이들의 환호와 즐거운 아우성이 귓전을 울렸다.

뿐만 아니라 작은 나무였던 호수 둘레를 돌아 서있던 벚나무들이 이제는 제법 굵어져서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게 되었다. 봄만되면 벚꽃터널을 걸어보려는 인파들이 몰려들었고 여름. 가을에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그들은 롯데 어드벤춰를 들어가 자연과 놀이동산을 동시에 즐겼다.

 

 

나는 이곳에서 반생을 살았다.

처음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낼적엔 불과 모래밭에 지나지않았던 불모의 땅.

그리고 청년시절에 살기위해 찾아들었던 작은 강건너 마을이 이제는 문명과 자연을 동시에 지닌 내가 좋아하는 타운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틈만나면 카메라를 들고나가 산책을하며 사진을 즐겨찍었다.

그렇게하면서 내 황금의 시절을 보냈다.

 

 

그 외에도 내 젊은날에 다니던 곳이 없어지고 새로생겨 바뀐곳들이 많다.

내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다니던 '향군회관'은 대형빌딩이 들어서고 그 일대는 삼성계열 회사들이 들어섰으며

삼성의 홈플러스라는 쇼핑상가가 들어섰고 전철 정류장이 3개선이 들어서며 잠실사거리는 빌딩숲이 되었다.

지금도 잠실은 자꾸 변모하고 있다.

 

다음엔 잠실의 올림픽공원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 Photo,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