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명절날 만난 우리의 문화유산 '景福宮' 소고(溯考)

Chris Yoon 2021. 11. 8. 02:34

 

얼마동안 텅 비워졌던 머리속이 '생각'으로 가득찬다

삭정이 같은 겨울나무들이 빈 까치집을 품고 있는

겨울고궁을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구정(舊正)

아직 매서운 추위속 오후의 景福宮을 찾아가 걷기로했다

짧은 해가 넘어가는 천년고궁의 뜰은 허허롭기만 하고

내 마음도 어느새 천년세월을 더듬어 간다

 

 

화려했던 오백년도 속절없이 가고

권력을 쥔 세도가들이 들끓으며

세력 다툼으로 날을 보냈던 근정전 뜰에

오늘은 나, 홀로 서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희미한 그 사람들

지금은 어디에 묻혀 백골되어 쉬고들 계신가?
아! 덧없는 세월따라 살아보니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어도

나, 조금도 부럽지않네

 

 

윗 풍경화(좌)는 조선시대의 광화문 일대 풍경이고 우측 사진은 현재의 광화문 일대 풍경이다.

모두 멀리 경복궁이 보인다.

저 멀리 북한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인왕산 밑, 희미하게 보이는 경복궁 근정전. 그곳 경복궁으로부터 광화문,

정동에 이르는 길이 한 눈에 그려져있다.

하얀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시간 너머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다.

처마를 마주대고, 물결치듯 너울거리는 기와들.

 

이제 우측 사진을 보자

근대화의 삶의 터전이자 중심이었을 그 거리에 현대의 빼곡한 빌딩도시가 되었다.

시대는 빠르게 흘렀지만 생각해보면 아직 그 시대의 향기와 정서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

그곳을 걷거나, 잠시 멈춰 서있거나, 바람속에 섞여오는 그때의 소리를 들을 때면 어느새 그림에서 보았던 그 시절의 일들이, 내가 살던 곳이,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현실속에 문득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실제 살아왔던 세월중에도 광화문 일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녀서 매일 변하는 이곳 풍경들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은 지금의 조선기와 건물대신 구리로 만든 현재 구시청건물같은 번쩍이는 조선 총독부가 있었다.

일제 때 중앙청이라 불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26년 경복궁의 정면을 가로막고 세워졌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정부 수립 후에는 중앙청으로 각각 쓰였고 1986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문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어두운 역사의 상징일지라도 후대에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맞섰다.

김영삼 대통령이 강력히 밀어붙여 건물은 철거됐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원되었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복원 공사를 마치고 광복 65년을 맞은 2010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이 정도면 파란곡절도 많지 않았나?...어두운 과거가 깃든 경복궁이다.

 

 

 

구중궁궐 사이로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오랜 뼈아픈 역사를 지닌 경복궁에서 외국에서 온 청년 하나가 나처럼 고개를 젖히고 용마루를 올려다 본다.

저 아름다운 처마사이로 보이는 인왕산, 처마와 처마 사이의 공간. 누가 찾아와 한번 제대로 올려다 보았을까?

"Where you fom?" 내가 물었다

"Sweden... Then where did you come from?"

그는 되려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청년, 기욤이 내게 간청을 한다.

- 한국의 역사를 아세요?

조선왕조 오백년에 서린 어둠을 나는 전생처럼 어렴풋이 알고있다

그는 내게 한국의 역사중 아는것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이야기해달라고 청한다.

 

시대와 도시는 바뀌었지만 조선의 제왕들이 거닐었을 그 뜰에 서면 고개를 맞대인 용마루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린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세자와 끝내 감싸주지않고 母子의 정을 끊은 帝王.

어느 궁궐뜰에선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할아버지의 용포를 붙들고 울부짓는 어린 세자가 있었고

강화도에서 붙들려와 영문도 모르고 왕이 되어 시름시름 앓던 강화도령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인왕산 치마바위에 펼쳐진 내쫓긴 아내의 치마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눈물짓는 帝王도 있었다

잔인무도한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당해 불태워져 경회루 연못에 버려진 왕비, 당파싸움에 희생이된 어미의 원한을 갚으려 폭군이 되어 君으로 강등한 임금도 있다.

500년의 哀史를 내 어이 다 알리야마는 많은 기억을 안고 바라보는 나의 애수어린 회상은 눈물겹다

 

 

물론 중국도 명절에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관광지는 발디딜 틈이 없다.

윗 사진은 코로나가 번지기전, 명절날 경복궁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많은 인파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한낱 우리는 고궁을, 명절날 차례 지내고 가족끼리 산책나오는 장소로 치부되어야 할까?

이건 나의 유감이다.

500년의 역사가 숨쉬는 우리의 고궁은 신성한 곳이다.

외국인이 우리의 역사를 보러오고, 우리의 역사가 멀지않은 서울 시내 광화문에 있고, 고궁에 뜰을 거닐면 시청앞의 높은 건물들과 뒤로는 인왕산 줄기를 타고 올라가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곳.

외국인들은 놀란다. - 어떻게 이렇게 시내 가까운곳에 고궁이 있고 산이 있지요?

우리는 좀 더 우리의 고궁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존해야 될것이다.

 

景福宮 :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 Photo, Copy :: Chris Yoon

 

* [溯考--] (사람이 옛일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