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나만 바람꽃인 줄 알았더니

Chris Yoon 2021. 11. 7. 06:59

 

이른 봄, 잔설이 채 녹기도 전에 나는 태어났다
얼굴을 세상에 내밀며 내가 태어난 곳은 험한 바위 산 아래
늙은 나무등걸 사이 겨우 뿌리를 박고 선 후미진 비탈길이란걸 알았다
'이까짓 세상... 될대로 되라지'
그렇게 살다 바람에 실려 가려고도 했지만
옆에 위태롭게 돌 틈에 핀 친구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너도 바람꽃,
나도 바람꽃
우리는 그렇게 바람꽃이 되었다

 

 

 

 

"나만 바람꽃인줄 알았더니
너도 바람꽃이었구나."


세상을 살아나가며 나만 이 세상에서 혼자인듯
외롭다거나, 이상심리를 가졌다거나 혹은 성질이나 행실이 못된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또 다른 인격체가 있다는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그와 걷잡을 수 없이 가까워지고 할 짓, 못 할 짓을 해가며 웃으며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것이 진정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리라.


나는 바람꽃을 아주 오래전에 이름으로만 듣고 뭔지 애잔한 슬픔같은 것을 느꼈다
아주 갸냘프고 작은 바람에도 미동하는 음지에 피는 작은식물같았다
그래서 이름 또한 'Wind flower'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원고를 쓰면서 검색을 해보니 '나도바람꽃'이 있고 '너도바람꽃'이 있다.
뿐만 아니라 꿩의 바람꽃, 변산바람꽃, 숲바람꽃, 홀아비바람꽃이 더 있다.
그 중 너도바람꽃은 'Wind flower'가 아니라 Eranthis stellata Maxim이라는 이름의
미나리아재비과식물로 꽃말은 '이른봄'이다. (아마도 이른 봄에 피어나 그렇게 붙여졌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말 이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정겹다.
너도바람꽃..., 그 앞이나 뒤에 '나도바람꽃'을 붙이면 여지없이 공범이 된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바람꽃이라는 이름때문에 바람둥이를 넘어서 간통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무에도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있다.
그러나 너도밤나무하면 왠지 나도밤나무보다 못한 짝퉁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꽃 이름으로는 '나도 바람꽃 너도 바람꽃...'하면 나도 그렇고 너도 어짜피 그런데
우리 서로 바람이나 피우며 신나게 향락을 즐기자는 뜻으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 꽃 이름을 참으로 좋아한다.
무척이나 감정을 숨기지않고 솔직하니까...


- Photo ::Chris Nicolas Yoon
- Copy :: 尹馝粒

- Music :: Greg Maroney - Lover's Lament

 

 




Greg Maroney - Lover's L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