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꽃이 피었더냐 XX - 영산홍(映山紅)

Chris Yoon 2021. 11. 1. 07:07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 나희덕의 <어느 봄날>중에서 발췌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는 벗(寫友)와 함께 양평에 있는 그의 농막으로 가다보면

이제는 은퇴하고 전원주택을 짓고 근처에 텃밭을 가꾸며 살고있는 나이든 분들을 본다.

그들은 남의 손을 빌리지않고 본인들이 집을 매일 손보고 있다

아담하게 공들여 지은 집들이다. 그런데 봄이오면 그 집들은 더 눈부시게 아름답다.

바윗돌을 쌓아 정원을 만들고 바위 틈마다 영산홍을 심었는데 황홀할 정도로 그 빛갈이 찬란스럽다

나는 꽃이 지나치게 빛갈이 요란하면 유치하다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봄이오면 어두운 겨울에서 벗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에 화사하게 피어난 영산홍만은 괜찮다.

영산홍이 꽃피어 있으므로 전원주택의 풍미가 살아나는듯하다.

영산홍은 철저하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꾸며진 정원과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인간들의 주거환경에 큰 공을 세우며 살아간다.

 

오늘도 양평 산중턱에 있는 사우(寫友)의 농막을 찾아 가는 길.

나는 영산홍이 핀 전원주택앞을 지나며 사우(寫友)에게 잠시 멈춰달라고 부탁하고 한동안 그 앞에서 멈췄다 간다.

 

 

 

영산홍은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꽃이다.

일본인들이 《만엽집》에 산철쭉이 등장할 만큼 오래전부터 심고 가꾸어 온 전통 꽃나무다.

오랫동안 산철쭉으로만 알아오다가 에도시대(1603~1867)에 오면서 비로소 산철쭉과 사쓰끼철쭉을 따로 구분하여,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에도시대 훨씬 이전부터 따로 품종개량을하여 자기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산홍의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기리시마철쭉, 구루메철쭉 등이 있으나 서로 교배하고 육종한 것이 수백 종이 넘어 일일이 특징을 말하기도 어렵고, 너무 복잡하여 다 알 수도 없다.

따라서 영산홍이란 사쓰끼철쭉을 대표 종으로 ‘품종 개량한 일본 산철쭉 무리’ 라고 정의하는게 옳다.

 

 

 

일본에서 자라는 철쭉의 한 종류인 사쓰끼철쭉(サツキツツジ)을 기본종으로 하여 개량한 철쭉의 원예품종 전체를 일컬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영산홍(映山紅)’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영산홍이란 이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꽃이었던 이 꽃나무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에서 보다 상세한 전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일본철쭉 두어 분을 조공으로 보내온것이 시초다.

 

 

 

조선 초에 들어온 사쓰끼철쭉은 일본철쭉, 혹은 영산홍이란 이름으로 왕조실록과 선비들의 문집에 등장한다.

영산홍을 가장 좋아한 임금은 연산군이다. 연산 11년(1505)에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 하고, 움막을 만들어 추위에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다음해에는 키운 숫자를 보고하도록 했다. 《지봉유설》에도 영산홍이 나오며,

《산림경제》에도 왜철쭉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의 진달래나 수달래, 산철쭉보다 영산홍이 더 고와서 좋다.

꽃과 잎이 동시에 올라오는 우리나라의 산철쭉에 비해 영산홍은 꽃봉오리부터 터지기 시작하여 무수히 많이 피어난다.

똑같은 꽃송이들이 닥지닥지 비현실적으로 많이 피어난다. 어지러울 정도로 거의 환각을 일으킬 정도까지 꽃 멀미를 일으키게한다. 그러면서 단정하고 곱다.

제멋대로 자라지않고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곱게 생긴 일본나라의 어린이들 같다.

일본은 지진과 재난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의 자녀교육은 특별나다.

지진에 대피할 수 있는 교육을 우선적으로 시키고 서로 단결하는 사회성을 심어준다.

그리고 단호하며 엄격하고 절제적이다. 겨울에도 학교에 보낼때는 반바지에 검정 스타킹을 신겨서 보낸다.

그래서 일본의 남성들이 개인적으로 볼때는 나약해보이나 여럿이 힘을 합치면 강하게 나타난다.

영산홍도 그렇다. (馝粒)

 

Photo, Copy, 글정리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