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 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않아도 보이고
듣지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 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리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흐르다가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박규리 詩 / 봄, 한낮...
사진 / 관악산에서 내려오다 삼막사로 걸음을 돌렸다
경내는 텅 빈듯 스님들은 동안거중이시고 늦은 오후의 햇빛만 게으르게
절집벽에 빈 나무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릴없는 절집개가 하품만 하더니 양지곁에서 낮잠을 청한다
나도 그 곁에 앉았다
"이보게, 절집개 삼년이면 염불을 외운다던데 반야심경이나 한번 읊어 보게..."
Chris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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