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국내여행

겨울, 태백 II

Chris Yoon 2021. 10. 25. 06:07

Winter Story

 

 

너무나 오랫동안 슬픔을 참으며
영겁세월 꿈보다 확실한 것은
이파리 하나로 성장해 가는 나무라고 이야기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떠나가며
사계를 건축하는 설계는
모래 속에서 이루어진 행위라고
한채의 집을 짓고 목수는 연장을 챙겨든다
다시는 아무것도 꺼낼게 없는 폐광 속에서
거미는 자신의 체액으로 자신이 살 집을 만들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한다
오래지 않아 굵어진 입술로 주문을 외우며
본의 아니게 손님이 되어버린 나무는
오는 일요일 모래와 만나 황혼까지 함께 있겠단다
그의 손이라면 어디 아라비아 사막이어도 좋겠다
수많은 가지를 흔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도리이다
한가하게 잠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은
귀찮은 친구를 옆에다 두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어두워져도 살 속으로 기어든다
옆에다 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떠나야한다
가끔 구름이 왔다가는 온만큼 빠르게 가버린다
너의 눈 속에는 가끔 구름낀 날도 있더라고
맨살로 비를 맞아 뼛속까지 신경통을 일으키고
그럴때면 새들의 날개도 녹이 쓸어 떠날 수 없단다
어제는 사과를 보았다
호수에서 달이 뜨고 나무도 달을 키우는 재미에 살아간다
너무나 높고 넓게 비어버린 하늘
이젠 나도 키를 키워야지
밤이 되면 편히 살찌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모여드는 사내들
기어오르는 자
헤엄쳐 건너는 자
너울너울 소리 없이 떠나다가 펄럭이는 옷자락을 붙잡고 우는 자
가을엔 결국 떠나지 못하고
나무는 잃었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나무가 눈꽃을 피웠다
스무 한해의 순백색 눈꽃
정말 오랜만에 웃어보았다
비가 없었더라면 여름잠을 잤을 거라고
나무는 동면하지 않는다
안심이다
저물 무렵 돌아온 황혼으로도 안심이다
살아있는 것은 무거운 짐이라고 유년을 팔아버린 할미꽃도
시들기 바로 그 순간에 후회했다
새로운 노래 환타지로 퍼진다
나무는 잔을 들어 건배하지만
넘치는 것은 눈물이었다
발밑에 흔적도 없이 시든
갖가지 꽃들과 꽃잎들을 보면서
기다리던 겨울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봄이오면 기어코 떠나리라고
마지막 북소리 울리며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단다

오래된 이야기 / 겨울 경춘선 中 - 신동호




친구가 장작을 패어 불을 때주고자신의 옷을 꺼내주며 편하게 입으라고 합니다.

그가 지어주는 저녁밥은 간결하지만 맛있고 장작불은 실내를 은은하게 비추며 따뜻합니다

처음에 낯설어하던 개는 이제 잘 따르며 옆에 와서 기대어 잠을 잡니다

겨울, 태백.이곳에서 깊었던 상처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Ludovico Einaudi - Fuori Dalla Notte

 

 

 

 

 

겨울, 태백

 

친구가 도끼로 장작을 팬다.

아침마다 그의 장작패는 소리가 내 잠을 깨운다.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내리치면 시원스럽게 두 쪽으로 갈라지는 나무 결의 소리.
명쾌하다.
곁눈질 하지 않고 내리치는 친구의 몸놀림

고스란히 드러내며 쪼개지는 장작

천상 보기좋은 화음이다

저토록 경지에 이르기까지 친구는 얼마나 긴 세월을 시달리며 부대꼈을까?
잘 쪼개지지 않는 장작과 대화하기란 늘 힘에 부쳤을 것이다.
그동안의 많은 복잡한 여정의 기록이다.


글 :: 윤필립 - 친구가 장작을 팬다

Photo :: Chris Yoon

Music :: Saltillo - A Necessary End

 

 



Saltillo - A Necessary End

 

 

 

 

 

겨울, 태백

 

 

 

제아무리 산이 깊어야 얼마나 깊겠냐마는,

사람의 속만큼 깊지도 않은 산이

눈이 내리고 바람이 잠자는 밤에는쩌렁쩌렁 운다.

등성이를 뒤채며 우는 산은 흡사 사내들의 마음과 몸을 닮았다.
불을 피우고 앉아 몸을 뒤채며 우는 산을 본다.
우리는 저렇게 살아왔다.

밤마다 저렇게 몸을 뒤채며 울었다.
쩌렁쩌렁 등성이를 뒤채며 우는 산은

흡사 사내들의 마음과 몸을 닮았다.

 

 

 

Asatur Demirchyan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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