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Auschwitz Best Photo V - 復活 revival
5. 부활
나는 아우슈비츠의 철조망 사이에 계란 두 알을 놓고 엎드려 묵념을 드렸다.
갇혀있던 그들에게 계란 두 알의 의미는 얼마나 소중하고 큰 것이었을까?...
배고픔을 아는 자만이 그 고통을 짐작하리라.
이곳에 잠들어 계신 영령들이여,
모두 부활하십시요.
- 부활절날, Auschwitz 수용소에서
구두가 없어도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모여 앉으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올해는 꼭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그러면서 그들 각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소가 배가 잔뜩 불러갖고 있으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난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난 성지 순례를 가면서 그냥 갈 순 없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기타가 줄이 끊어졌단 말야.
기타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의 유태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발가벗기운 채
가스실로 향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성지 순례를 떠나지않았어.
그때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았어."
"난 구두가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지.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야."
음악가는 말했다.
"난 기타 핑계를 댔지.
기타줄이 없으면 성지 순례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했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의 말처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갔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이 났다.
관객들이 다 나간 뒤에도
나는 한참을 혼자서 앉아 있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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