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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zsky hard(프라하 城)

Chris Yoon 2021. 10. 19. 04:15

프라하 성 ( Czech語 : 프라슈스키 흐라트 / Pražský hrad)은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 블타바 강의 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城으로 프라하의 초기 역사부터 존재해 왔으며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대표적 건물이다.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이곳에 자리잡고 있다.prazsky hard(프라하 城)은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이다.길이는 약 570 미터, 폭은 약 130 미터에 달한다.城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시가지는 온통 붉은 기와지붕의 물결로 아름답다.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프라하성은 9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던 자리였다.11-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바실리카 (Romanesk Bazilika)교회가 성 비타 로툰다를 대체하기 위해 세워졌고이어 성 조지 교회가 재건되었다.특히 같은 시기에 외각의 돌담이 축성되어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예전에 체코 왕이 살았던 곳으로 1918년 체코 대통령의 거주지가 되었다.로얄 정원과 남쪽 정원, 갤러리, 앤 여왕의 여름 별장은 여름에 개방한다.

 

- 운영시간 4~10월 05:00~24:00, 11~3월 06:00~23:00

  • 입장료 무료

 

 

prazsky hard(프라하 城)정문.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왕궁이다.
러나 프라하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문 앞에 있는 '흐라드차니'광장을 둘러 보는것도 좋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모르는 사람들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축제의 현장이다
뒤로 보이는 쌍둥이 뾰족탑이 城 비투스 성당이다.

 

 

정문 오른쪽 기둥 위의 황금색 왕관을 쓰고 있는 독수리는 체코를 400여년간 다스렸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이며
정문의 왼쪽 기둥 위의 황금 왕관을 쓰고 있는 사자는 체코 보헤미아의 문장이다.
싸우는 거인상은 합스부르크가 체코를 다스리는 힘, 즉 오스트리아인이 체코인을 내리치는 모습이다.

 

 

위병 2명이 지키는 건물의 작은 아치형 문을 통과해야 프라하 城 광장이 나온다.
정문에는 2명의 초병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데, 이들과 사진을 찍고싶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위병들의 모습이 수려하게 잘 생기기도 했으려니와 옆에서 사진을 찍고 별 짓을 다해도 요지부동
꼼짝을 안한다. 마치 조각으로 빚어논 잘 생긴 군인인형같다.
여성들은 그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내내 가슴 설레이곤 한다
매시 정각에 위병 교대식이 있는데 정오에 있는 위병 교대식은 볼만하다.

 

 

프라하 城안에는 聖 비투스 성당과 구왕궁 (Stary Kralovsky Palac - Old Royal Palace)이 함께 있다.

성 비투스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교회로 프라하 城 안의 최대 볼거리이다.

그 당당한 모습은 성의 외곽이 되는 건물군부터 빼어나게 돋보이기 때문에 블타바 강 맞은편에서도잘 보인다.

926년에 바츨라프가 지금의 장소에 원형의 교회 건물을 지은 것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새로 지었다.

고딕 양식의 현재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14세기 카를 4세 시대의 일이다.

프랑스 건축가 마티외 드 아라가 동쪽 예배당 8채를 완성했고, 그가 죽은 후 23세이던 독일 출신의 건축가페테르 파를레르시가 생애를 바쳐서 성가대석, 내진의 아치 천장 등 현재의 동쪽 절반을 완성시켰다.

그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 건설되다가 192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서쪽의 약 절반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건설된 부분이다.

완성된 대성당은 전체 길이 124m, 너비 60m, 천장 높이 33m, 3기의 탑 가운데 남쪽 탑은 96.5m,서쪽 정면에 있는 2기의 탑은 82m이다.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기로.)

 

사진을 찍는다고 멋 모르고 셧터만 누르다가 노출, 타임, 조리개의 관계를 철저히 계산하며
완벽을 꿈꾸는 사진을 시작한지도 어언 40여년 세월.
그러나 이제까지 나의 사진 이력에 있어 城 비투스 성당 외관을 찍은것만큼 어려움은 없었다

성당의 높은 첨탑을 올려 찍으려면 가까이선 파인더로 다 잡기가 힘들고, 또 가까스로 파인더에 잡힌다 하더라도

밑에서 위로 치켜 봐야하기 때문에 아오리가 잡히질 않는다 (* 아오리 : 사진용어로 건축물을 촬영할때 像이 휘는 것을 똑바로 잡는 것)옆에서 걷던 청년이 나를 안내한 곳은 다리를 건너기 전, 옆으로 난 숲길 빈 터 였다.

- 성 비투스를 찍기로는 이곳이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장소는 城의 모습은 파인더에 다 들어오지만 나무에 가려 지붕만 보일뿐,

더구나 城은 저 건너편 햇빛을 받아 노출이 강하게 빛나고 내가 서있는 곳은 온통 나무 그늘로 뒤덮혀 노출이 상당히 부족한 곳이었다

城에 노출을 맞추면 城앞을 막고있는 나무숲이 온통 새까맣게 역광으로 나오고 나무들에 노출을 맞추면 城이 온통 하얗게 날아가 버리는 아주 악조건의 장소였다

나는 전력투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옆에 있는 청년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내 인증샷을 부탁했다

예측대로 새까만 역광촬영으로 인해 城의 그늘에 묻힌 내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돌아와서 나는 포토샾으로 간신히 어둠속에 묻혔던 나를 건져 냈지만 하늘도 하얗게 바래고 城의 색감과 질감도 뭉게지고 인물의 디테일은 커녕색감을 깎아내다 보니 피부색이 동양인도 흑인도 아닌 아주 어색하기만한 사진이 되어버렸다

비투스 城 전체가 나오는 인증샷 하나 못 만들고 이따위 사진을 갖게 되다니...

 

 

구왕궁 (Stary Kralovsky Palac - Old Royal Palace)


성비트대성당 바로 오른편에 자리한 구왕궁은 1135년 소베슬라프 1세(Sobelsav I) 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진 후 16세기 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위에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계속 증축되면서 여러 가지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 되었다.
합스부르크 통치기간에는 정부청사와 법정, 구보헤미아 의회가 있었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제 3정원의 남쪽에 지어진 커다란 건물을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3동의 건물을 연결해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한 궁전이다.지금은 대통령의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쓰이고 있다.

 

 

프라하 城엘 들어 올때는 분명 무료였지만 聖비투스 성당과 구왕궁엘 들어가길 위해선 표를 사야한다
구왕궁 입장 티켓250Kc(3가지를 보는 짧은 코스)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선 포토티켓50Kc를 지불해야 한다.
위의 좌측 사진은 일반 촬영 금지로 포토티켓을 소지한 사람만 촬영 가능하다는 표지판이다
나는 300Kc를 내고 구왕궁입장 티켓과 촬영허가증을 샀다

 

 

아치형에 그 모습마저도 예술작품인듯한 높은 천장. 그리고 지금은 그 빛을 조금 잃은 나뭇 바닥.
무도회, 연회, 기마상까지 들어와 경기까지 이곳에서 모두 치뤄진 곳이다.
프라하 성에서 펼쳐지는 많은 행사와 축제가 도맡아 폎쳐지기도 한 곳.
낮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밤에는 아름다운 프라하 밤거리가 아늑하게 보였을 것이다.
보헤미아 대법관의 방과 말을 타고 들어올 수 있는 기사들의 통로, 의회당, 예배당 등 몇 군대의 방도 함께 개방중이다.
이 아름다운 구왕궁은 체코 역사를 배우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지이고 발생지이다.
1618년 5월23일 30년 종교전쟁의 계기가 된 '창문 투척 사건'이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독실한 가톨릭 황제였던 페르디난드 황제가 보헤미아 왕위에 등극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개신교 귀족들이 왕궁으로 쳐들어와 페르디난드가 임명했던 보헤미아 귀족들을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15m 아래로 던져진 귀족들은 다행히 건초 위에 떨어져 살아났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후 1618~1648년 까지
유럽에서는 가장 길고 잔인했던 30년 종교 전쟁이 있어났다.
가톨릭에선 이 사건으로 귀족들이 천사들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믿게 됐다.

 

 

* 황금골목 : 성 이지 성당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왼쪽에 좁은 골목이 나온다.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황금의 골목' 이라는 곳인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인형의 집 같은
작은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붙어있다.
이곳, 황금의 골목도 보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16세기, 루돌프 2세 시대에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성벽 회랑 아래의 아케이드를 이용한 작은 집이었으나
시대를 거치면서 길쪽으로 증축되었다.
1층의 높이가 1m도 채되지 않는작은 집이 성벽 부분만이 아니라 길 양쪽에 지어져 슬럼화되었다.
'황금골목'이라 불리는 것은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들이 이곳에서 불로 장생하는 비약을 만들었다고
하는 설에 근거했다. 또 일설에는 이 거리에 금박 장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1950년까지 이곳엔 시민들이 살았지만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에는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은 집집마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들어서 집과 붙어있는 성벽에는 갑옷과 무기 박물관이 들어차 있다.
22번의 푸른색 집은 1917년에 프란츠 카프카가 작업실로 사용했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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