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
- 이성복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문학과지성사)에서
몇일전부터 비가 내린다.
어떤날은 몇 방울씩 떨어지다 그치고, 또 어떤날은 바람이 불며 줄기차게 내린다.
오늘이 그런날이다.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며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큰 키를 어쩔줄 모르고 휘청거리며 심하게 흔들린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차안에서 비오는 풍경을 내어다보며
이어폰으로 음악만 듣다가 오후 늦게 돌아왔다.
그래, 음악... 비오는 날은 [음악]이다.
윗 시에선 비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듣는 이가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인 '나'로 표현돼있다.
음악의 장르도 분명치 않지만 아마 대중가요가 어울릴듯하다.
대중가요도 발라드인지 트로트인지알 길이 없다.
명백한 단서가 없지만 일단 대중음악이라 생각하고 읽는 게 편할 것 같다.
대중가요의 경우 평소 가사에 별 관심을 갖지 않고 듣던 노래도 비오는 날 차안에서 가만 듣다보면
그 노랫말이 꼭 내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래 맞아, 저건 바로 지금의 내 이야기야’ 그런 생각이 들 때는 그래도 감수성이 활짝 열려있을 때이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했을 때의 현상인데, 상념의 날개에 그 음악이 매달리면 모든 가사들이 다 동일시되고 만다.
삶의 보편적 주제를 큰 깊이 없이 슬쩍슬쩍 건드려주는 상투성이 더욱 그렇다.
그래도 비오는 날엔 음악이 마치 스폰치에 물이 스며들듯 한없이 당긴다.
이런 날, 차를 운전하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을 해보자.
밀폐된 공간이 마치 음악실처럼 좋다. 그만큼 음악에 몰두할 수 있다.
운전이 미숙하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서라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긴 여행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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