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에게) 이가림
그 헐벗은 비행장 옆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
스물아홉 살의 강한 그대가 죽어 있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스토브조차 꺼진 다락방 안 추운 빙벽 밑에서
검은 목탄으로 데생한 그대 어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킬리만자로의 눈 속에 묻혀 있는 표범이다.
빛나는 대리석 토르소의 흰 손이 떠오르지.
지금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의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겨울이 빈 나무허리를 쓸며 있는 때,
캄캄한 안개 속
침몰하여 가는 내 선박은
이제 고달픈 닻을 내리어 정박하고서
축축히 꿈의 이슬에 잠자는 영원인 것을,
짙은 밤 부둣가 한 모퉁이로
내 아무렇게나 혼자서 떠나보네.
갈색 머리 흑인여자의 서러운 이빨같이
서걱이는 먼 겨울 밤바다 살갗은
유리의 달에 부딪쳐 바스러지고
죽음보다 고적한 외투 속의
내 사랑은
두 주일이나 그냥 있는 젖빛 엽서
나목 끝에 마지막 한창 가랑잎새로 지는 것을
쓸쓸히 웃으며 있네.
지난 쌩 마르뗑의 여름 밤주막에서
빨갛게 등불을 켜 달고
여린 별빛들이 우리 잔등에 떨어져 와 닿는,
들끓는 소주를 독하게 마시며 울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그대 건강한 의사가 되겠다고 여름내
엄청난 야망은 살아
자기 안의 한무더기 폭약에 방화도 했지만
참혹하게 파손되어간 내실이었음을,
어느 저녁 식단에선가, 눈물 글썽이게 하는
그대 슬픈 소식을 건네들었지.
지금은
옷고름처럼 나무끼는 달빛에 젖어
마른 갯벌 바닥으로 배회하다
무릎까지 빠지는 맨발의, 괴로운 밤게가 되어서 돌아오는
조금씩 미쳐가며 나는 무서운 취안인 채
황폐한 자갈밭을 건너
흐린 가스등 그늘이 우울한 시장가에서
눈은 내리고
하얀 수의 입은 천사처럼 잠시 죽어봤으면 생각하다가
포효의 거대한 불꽃으로나 멸망하기를 소망하다가,
아아 자꾸만 목이 메이고 싶어지는
내 고단한 목관의 노래는 떨려
오뇌의 회리바람에 은빛 음계들이 머리칼마다
흩날리며 있네.
그 드빗시 찻집 유리 속의 금발이 출렁이는 인형은
젖은 눈에 성애 낀 창밖을 보고
수런대는 목소리들 잔 둘레로 넘쳐나
비듬처럼 쌓여가는데
잊히인 의자 아래 이랑져오는 음악의 꽃빛 눈부시는
바람결 소리여,
이 침전하는 장송의 파도가에 앉아서 단 한번
고운 색깔이 아롱진 어안의 나는
뜨거운 두 손으로 피곤한 이마를 묻어보네
196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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