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최갑수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
오래 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짧은 햇빛은
뭉툭하게 닳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룽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렀던 자리 11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
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고는
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
그 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덮어두었던 오래된 시집
바람도 읽다 만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
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 이상 그리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
시집 갈피 사이
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처럼
낯설고 겸연쩍기만 한데
(최갑수·시인, 1973-)
가을이 깊다. 햇살이 투명해 지면서 찬공기에 몸도, 마음도 춥다.
여름내 정원에 내놓았던 화분들을 들여놓고나니 또 겨울김장 걱정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간단하질 않다.
문중(門中)에 마지막 남으신 어른이 편칠않으셔서 며칠마다 한번씩 찾아뵙고 돌아오면 허기가 밀려든다.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겨를도 없이 또 사내들틈으로 섞여들어가 욕설과 웃음이 난무하는 속에서 일을하고 귀가하며
비로서 맑게 지는 저녁해를 보며 나뭇잎 지는 가로수아래서 가을의 깊어감을 느낀다
올해는 시집하나 읽을 틈이 없었다. 그러나 가을은 여전히 깊고 투명하게 스며든다.
Music :: Years Ago - Michael Ho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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