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남자의 리듬VII

Chris Yoon 2022. 4. 7. 00:18

남자의 리듬 VII

 

남자의 나이 예순, 우리는 남자의 나이 예순을 비로서 완성된 나이라고 한다.

남자는 비로서 완성되어 자기자신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 앉은 남자는 밤새 고온다습(高溫多濕)의 변화가 심한후, 안개가 서린 밤을지내고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로 태어난듯 맑고 투명해졌다.

 

정년퇴직을하고 연금개시를 기다리며 노후를 계획하는 남자의 나이, 예순살은 인생의 황금기이다.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않고 포기할것은 포기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회사일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나온 남자는 한동안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음에 분노에 떨기도 했지만 모든걸 현실로 받아드리고부터는 홀가분해졌다.

돈을 더 벌어서 유학간 아들에게 보내지않아도 되고,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매일 자신의 차를 운전하여 강남 역삼동에 있는 사무실로 나가지않아도 된다.

평생을 건실하게 살아온 남자에겐 남들이 사는만큼 돈도 모아졌다.

단지 이 나라의 정권이 요구하는 세금이 벅찼다. 그래서 마음대로 여행을 다니지 못하며 돈을 쓰지못하고 재산세를 마련하기위해 용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아 저축을 해서 연말이면 벅찬 세금을 내야만했다.

 

 

그래도 한동안 가슴속의 울분은 꺼지질않았다. 그럴적이면 남자는 산으로 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다 내려왔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사는 곳, 올림픽공원과 석촌호수 일대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젊은 나이 마흔살에 들어온 남자의 동네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그중 남자는 자신의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126층의 고층빌딩숲 풍경을 특히 좋아했다.

남자의 눈에 젊어서는 보이지않던 풍경들이 이윽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것이다.

 

 

일년에 한차례씩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60이 되면서 환갑잔치대신 아내가 베풀어준 서유럽여행을 시작으로 동유럽, 남유럽, 일본 북해도를 구경하고 돌아왔다.

유럽의 고풍스런 풍경들은 남자에겐 결코 낯설지않은 데쟈브로 다가왔다.

남자는 많은 사진을 찍고 돌아와 여행지를 회상하며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 여행기를 썼다.

남자는 행복했다. 이제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것이 익숙해졌다.

 

사진을 하는 친구도 생겼다.

뉴욕에서 온 친구는 남자와 함께 좋은 파트너쉽을 이루며 우리강산의 곳곳을 다니며 이야기도 나누고 밥을 사먹으며 잠도 함께 자고 나이가 든 후의 소확행을 누렸다.

어느 날, 강원도 산길을 내려오며 그 친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형, 왜 그렇게 못 따라와?

 

 

남자는 심각하고 무서운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병원들을 다니며 진찰을 받고 그들의 오진과 터무니없는 오판단으로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밀로이드종'을 겸한 '다발성 골수종'... 두 가지 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형질세포가 악성변화하면서 '단클론감마'와 '무증상다발성 골수종'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발성 골수종'에 이르면 생명을 잃게된다.

 

- 위험한 상태이니 일단 입원을하고 검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의 지시대로 남자는 우선 병원에 입원을 한후 여러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여러곳의 X-Lay와 초음파, M.R.I. 채혈검사, 그리고 제일 큰 검사는 '골수검사'와 '심장, 신장 세포 조직검사' 그리고 '복부의 지방 조직검사'를 했다.

남자는 죽은듯이 눈을 감았다.

그동안의 긴 여정이 떠오르며 좀 더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후 홀로 남겨질 아내를 생각하며 병실에 누워 쓸쓸히 눈물지었다.

 

남자가 '아밀로이드종'을 동반한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 선고를 받은지 3개월이 지났다.

이제 남자는 지하철을 타고 조심스럽게 집과 강동역을 오가며 병원을 다닌다.

남자는 처음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을때 눈앞이 하얘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졌었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는 현실. 그래서 남자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아밀로이드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린 현실을 받아드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처음 남자는 진단을 받고 한달간을 정밀검사를 하며 치료를 받기위해 입원을 했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입원을 하여 3일간 항암치료를 받는다.

이렇게해서 얼마나 더 생명이 연장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하루라도 더 살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각해보면 남자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만의 리듬'이 있었다.

몇번인가 삶과 죽음을 오고갔던 일들, 그때마다 용케도 피하듯 운명을 빠져나와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섰었다.

그리고 항상 작업실에서 점토를 주무르고 돌과 나무를 깎고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예술가로서의 정신을 잃지않았었다. 늘 고집있고 흑과 백의 논리가 강하다는 평은 들었지만 불의를 보면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고 그에 대항해서 맞서 싸웠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여 옳게 되돌려놓고 많은 사고[思高]와 사유[思惟/ 생각하고 궁리]로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그르치지않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70년. 그 남자의 리듬.

때로는 즐겁고, 희열에 벅찼고, 때로는 슬펐고, 죽고싶으리만큼 절망스럽기도 했던 남자의 리듬이었다.

그러나 그 지루했던 세월, 젊어서 한때는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랬던 날들은 지나고나니 극히 짧았다.

 

남자는 비로서 이제야 알게된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이라는걸. 

그리고 인생은 초가을의 햇살같이 짧다는 것을.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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