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Art수첩

같은 이름으로 다뤄진 명작들

Chris Yoon 2021. 12. 4. 02:28

같은 이름으로 다뤄진 피렌체의 명작들

우리가 세상을 살며 관습과 방법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자꾸 기존의 자세를 반복하며 힘들어할때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방법과 새로운 견해로 벗어나질 못하고 그 자리에서만 맴돈다는 것은 때로는 발전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미술에서도 그렇다. 대학4년을 공부하면서 3학년때쯤 되면 한번쯤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거나 깊은 고민에 빠질때가 있었을 것이다.

- 너, 매너리즘에 빠져들었구나.

이런 말을 교수님께 들었던지,

- 나, 매너리즘에 빠졌나봐.

라면서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잔디밭 벤취로 망연히 나가앉아 담배를 피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너리즘(mannerism)은 이탈리아어 마니에리즈모(manierismo)의 영어 번역으로, 마니에라(maniera), 즉 ‘방식을 따르는 주의’이다. 이는 1520년경부터 1600년경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나타난 문화 현상을 가리키는데, 특히 미술 영역에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소위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형 양식이 절정에 달하자

그 후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방식을 본받아 따라하는 경향을 보였었다.

미술사 연구의 초기에는 매너리즘 경향의 16세기 작품들을 거장들의 아류로 폄하하여 부정적인 의도로 매너리즘이라 불렀던 적도 있다. 그러나 점차 이들의 작품에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일탈과 변형의 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이나 문학을 감상할 때 새롭거나 더 나은 점이 없고 그저 많이 보던 것들 중 하나라고 느끼거나 혹은 전보다 못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식상하다고 한다. 그래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전의 것을 뛰어넘거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러면 같은 이름으로 다뤄진 두 개의 작품을 비교하며 이야기해보자.

 

좌로 부터 : 미켈란젤로의 David / 베로키오의 David 1473~1475,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 소장 / 베르니니의 David

 

기존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들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매우 안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면

그 후의 매너리즘을 피하기 위한 조각들은 최대한 몸을 뒤틀며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왼쪽 미켈란젤로의 David와 베로키오의 David는 좌우 비대칭의 매우 안정된 자세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다비드의 감정은 나타내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 로마 보르게세미술관에 있는 베르니니의 다비드(1624년,)는 돌팔매를 날리기 직전의 역동적인 자세와 앙다문 입술로 인물의 감정과 느낌을 한껏 실었다는 차이가 있다.

몸을 뒤틀고 불안정한 자세로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와 베로키오의 다비드 상에 대응하는 조각으로 베르니니의 ‘다비드 상’은 역동성을 보여준다.

베르니니의 힘을 모아 돌팔매를 날리기 바로 직전의 다비드는 대칭적이고 균형적이며 안정적인 미켈란젤로의 작품과는 달리 강렬하게 뒤틀린 몸은 비대칭적이며 강한 운동감을 보여주는 대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베르니니의 다비드를 어떤 틀 속에 가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령 그렇더라도 작품의 운동감과 생동감으로 그 틀은 견디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감상자의 시점을 정확히 한 지점에 정해 주었다. 하지만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David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의 몸이라 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생동감과 긴장감이 최고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대리석이 먼저 정해지고 나중에 작가를 선정하였다 한다.

전에 카라라에서 운반된 대리석은 몇 명의 조각가가 손을 대었으나 미완에 그치고 방치되었다가

1501년 26세의 미켈란젤로가 적임자로 선정되어 제작하게 되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David / 1473~1475,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

우리가 생각하는 다비드의 전통적인 모습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용감한 소년인데 같은 다비드를 표현해도

전투 전이냐 후이냐, 또 소년이냐 청년이냐 등 몇 가지의 창의로운 생각으로 전혀 다른 다비드가 창작되었다.

 

도나텔로(Donatello)의 David / 높이 158, 1440,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혁신적인 조각가.

1440년 경에 만들어진 도나텔로의 다비드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발표 전까지 고전 이후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받았었다. 놀랍게도 미캘란젤로의 스스이었다하는데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흉내 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나 보다.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의 <골리앗을 무찌르는 다비드> / 높이 170cm, 1623,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바로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로 그는 현재의 로마를 완성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그의 손을 거쳐 지금의 웅대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 가운데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로마의 분수이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분수들은 오늘날 많은 영화와 광고의 배경이 될 만큼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623년 베르니니는 <골리앗을 무찌르는 다비드>를 만들었다.

물론 이 작품도 명작이다.

 

 

 

 

피렌체의 시뇨리아광장에는 두 개의 카쿠스(Cacus)를 죽이는 헤라클레스(Heracles) 조각상이 있다.

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왼쪽 반디넬리(Bandinelli)의 헤라클레스와 카쿠스(Hercules and Cacus, 1533년)와 오른쪽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헤라클레스와 네소스(Hercules and Nessus, 1599년)이다.

비교를 해 보면 두 인물의 자세와 몸의 뒤틀림 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반디넬리(Bandinelli)는 곧게 서서 카쿠스의 머리를 잡고 내려치기전에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다.

꼼짝없이 잡힌 카쿠스는 무척이나 매달리고싶은 얼굴이고. 표정들이 과히 일품이다.

반면에 중간과 오른쪽의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작품은 네소스의 목을 잡고 허리를 꺾어 마악 몽둥이로 내리치려는 찬라이다. 무척이나 역동적이고 힘차다.

지암볼로냐는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인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래 사진이다.

좌: 지오반니 볼로냐 (1583)Giovanni Bologna의 사비니여인의 약탈 (1582년)

우: 베르니니(Bernini) 작품인 페르세포네의 강탈(1622년).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지오바니 볼로냐(Giambologna) 작품인 사비니 여인의 납치(1582년)

각각의 인물들도 몸을 뒤틀어 역동적인 자세와 긴박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세 인물의 배열 또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나선형의 배치로 역동성을 배가시킨다.

이러한 배치는 360도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각각 다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베르니니(Bernini) 작품인 페르세포네의 강탈(1622년).

지오반니 볼로냐 (1583)Giovanni Bologna의 사비니여인의 약탈보다 더 섬세하게 표현이 된 작품이다.

어떻게 대리석을 가지고 저토록 피부를 표현했는지 그저 감탄스러울뿐이다.

힘을 줘서 잡은 여인의 허벅지에 실물처럼 피부가 들어갔다.

맨 우측 사진은 조각과 비교하기 위해 실제 인간의 피부 사진을 넣었다.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