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꼬막 - 박노해

Chris Yoon 2021. 11. 14. 05:02

 

 

 

꼬막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멋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겄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이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셧다느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읎어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야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는가 살았능가

 

 

 

박노해 시인이 멀리 바닷가 마을, 벌교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형식을 빌어 쓴 詩이다.

아이러니 하다.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놔야 꼬막이 실해진다니...

오래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어부가 고기를 잡아 돌아올때, 고깃통에 작은 상어 한 마리를 넣는다고 한다.

상어는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 따라다니고

다른 물고기들은 안 잡히려 도망 다니고

그러다보면 죽은 놈 하나없이 말짱하게 돌아와 제 값을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사회도 그런가보다.

서로 긴장되는 인물들이 공존하는 서열속에서

비로서 옳바른 질서가 확립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