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강물처럼 피곤하다
밤과 낯선 땅을 지나 슬픈 동행이다
말을 잃은, 강과 나, 둘의 방랑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둘 다 모른다
* 헤르만 헤세의 <夜行> 중에서 발췌
- 가을이 오니 하늘이 높구나
- 아빠, 불순물이 적어지니까 높아보이는거야
- 가을이 오니 노을이 곱구나
- 아빠, 그것도 불순물이 적어지니 고와 보이는거야
- 노을이 가장 곱게 보이는 곳은 이세상 어디쯤일까?
- 아빠, 저녁 6시반, 잠실대교에서 보면 제일 곱게보여
이것은 어젯저녁 나와 내 아들의 대화였다
우리는 저녁강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잠실대교 중간에 섰다
하늘과 강물은 늘 서로 닮아있다
하늘빛이 푸르면 강물도 푸르고
하늘이 노을빛이면 강물도 노을빛이다
노을이 지는 시간은 극히 짧다
구름속에서 불덩이같은 해가 고개를 내밀면
강물이 되받아 불을 내품는다
그 짧은 해와 강의 만남,
그렇게 그들은 잠시 이루어진다
그것이 노을이다
젊은날의 뜨겁던 사랑
그것도 노을처럼 짧게 끝나고 말았다
어둠이 내리면 가로등이 켜진다
바라보이는 강건너 불빛은 고즈넉하다
마치 내가 살던 브르클린에서 바라보던 맨허턴의 불빛이다
그대, 기억하는가?
브르클린 브릿치를 걷던
그 바람불던 날을.
안개만 끼었으면
마치 로버트테일러가 나왔던 런던브릿치로군.
군복을 입었던 로버트테일러의 젊은시절을 종종 떠올린다
그 영화에 나왔던 비비안 리는
안개 자욱한 런던다리 위에서 자살을 했었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늙은 로버트테일러가
런던다리 위로 찾아와 그녀와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나도 영화처럼 다리 난간위에 업드려본다
죽음을 택하기 전에 어떤 여자가 떠오를까?...
때로는 영화속의 장면이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고
따라 다니기도 한다
레오 까락스 감독의 '뽕네프(Pont Neuf)의 연인들'에서 두 연인은
낮에는 거리에서 방황을 하고
밤이면 뽕네프 다리위에서 잠을자는 걸인이었다
다리위에서 잠을자면 강물소리가 밤새 들릴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픈 상처도 다 치유 되겠지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 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혼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푸른밤 - 나희덕
돌이켜보면 나의 생애는 큰 강이었다
급류가 있고......
흐르지 않고 맴돌던 곳도 있었다
그러나...중요한 사실은
항상 고여있지 않고
썩지않았다는 것이다
한남자와 한여자가 내 옆에서 내려가더니 탱고를 춘다
탱고는 격렬하다. 그리고 무척 에로틱하다
아르헨티나 브에노스 아이리스에서 생겨난 춤
원래 탱고는 가난한 뒷골목에서 사내들끼리 추던 춤이었다
그래서 영화 <해피 투게더>를 보면
양조위와 장국영은 좁은 아파트에서 탱고를 추었다
나는 한동안 탱고를 추는 그들을 보고 서있었다
너의 얼굴에 눈물이 마르고 가을이 간다.
인연의 마지막 숨들을 거두어
긴 겨울을 준비하는 들판.
내밀히 죽음의 싹들을 틔우고
지난 여름은 언제나 격렬했다.
폭양의 흔적들 희미해지며 무모했음, 허나
살았음을 일깨우고
심연으로 심연으로 옷을 벗는 겨울강.
왜 불안 했던가.
얼굴 시리게 바람은
미열 앓던 기억들만 거느리고
왜 나는 늘 배반을 예감했던가.
사는 일은 꿈을 꾸는 일이라고
너는 왜 말했던가.
들판과 발정난都市 사이에서
끝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며
겨우 당도한 겨울강.
관절들만 낡아 가고
내륙 깊숙이 안개만 깊어진다.
- 김민홍의 겨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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