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 정태춘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구만 푸르고
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 뚝
앞산 하늘은 보재기만 하고 속세는 지척인데
막걸리집에 육자배기 하던 젊은 여자는 어딜 갔나
마하 반야 바라밀다 아아함,
옴 마니 마니 마니 오오홈,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구만 푸르고
재 재 재 새 소리에도 후두둑 꽃잎 털고
줄포만 황해 밀물 소금 바람도 잊아뿌리고
도회지 한가운데서 재미 나게끔 사시는데
수리 수리 마하 수리 아아함,
옴 두루 두루 두루 오오홈,
칠천원짜리 동백 한그루 내아파트 베란다에서 낙화하시고
느닷없는 죽비 소리로
"게으르구나"
옴 마니 마니 마니 오오홈,
옴 두루 두루 두루 오오홈,
선운사에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
서울로 모셔다가 오래 보자 하였더니
할!
* 할(喝) / 꾸짖다의 뜻
속음은 '갈'이다. 佛家에서는 '할'이라 발음한다. 선종에서 진리를 문답할 때에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큰 소리로「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이는 것이니, 선종에서 선문답때 많이 쓴다.
선운사에 갔더니 거기도 속세다.
동백 한 그루 사서 서울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려 가져왔다.
그런데 고사(枯死)했다.
문득 번쩍 깨달음. 이것 역시 탐욕이었구나!
아파트 내 집이 수행처로구나. 할!
빈섬 이상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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