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禪 Series XXXXII /望月寺 回顧(망월사 회고)

Chris Yoon 2021. 11. 11. 03:25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오면 오세요.

암자에 올라 망월사 경내를 내려다보면

젊은 스님들이 맑은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푸른 물고기들처럼 힘차 보이고

오래된 은행나무를 닮은 주지스님이 염불하러 힘겹게 돌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대웅전 옆 문, 댓돌 위에 앉아

아득한 세상을 내려다보던 시절이 있어 오르고 또 올랐지요.

 

그 해, 그 가을의 망월사.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기를 정해놓고 상원에게 용문사엘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다.

상원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현재 스님은 하안거중,

그리고 몇일후, 스님이 망월사에 계시니 주말에 망월사로 가뵙자는 답이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높은 산을 올라 갈 수가 없다.

그토록 좋아서 여러번을 올랐던 망월사를.

 

망월사(望月寺)는 도심이나 낮은 산자락에 펼쳐져있는 절이 아니고 전철을 두번씩이나 갈아타고 의정부로 가다가 도봉산(道峰山)자락으로 접어들며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행을하다보면 거의 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숨이 턱에 차고서야 갈 수 있는 절이다.

 

큰 사찰이 산중에 있다해도 길을 잘 닦아놔서 차를 운전하여 절 입구 주차장까지 가서 몇 걸음만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절이 아니다.

전철역에서 내리고부터 바로 오르막길로 시작하여 부지런히 산행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절. 그야말로 뜻이 하늘에 닿고 정성이 뻗쳐야만 찾아갈 수 있는 절이다.

 

내가 이절을 즐겨찾는 이유는 돈많은 신도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올 수도 없고, 또 철없는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와 시끄럽게 절을 어지럽히지도 않아 늘 절이 조용하고 낙가보전을 둘러싼 탱화들이 마치 현대적 판화처럼 기품있는 수준작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찰의 탱화들을 보면 섬찍하게 두려울 정도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무당집 그림같아서 탱화속의 주인공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않은데 망월사의 탱화를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급스런 갤러리의 작품들을 보는듯, 나 또한 격조가 한층 높아지는것 같다.

탱화만 그런것이 아니다.

서원에는 아직 도량을하는 스님들이 많이 기거하는데 하나같이 모두 젊고 잘 생기셨다.

가끔 그들과 마주치면 소슬바람을 만나는듯 해맑은 시선을 대할 수 있어서 좋다.

 

 

 

그 해, 초가을의 망월사,

불가에서는 인연을 함부로 만들고 쌓지도 말라했거늘, 그날도 해맑간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고 말았다.

텅 빈 듯 조용한 낙가보전으로 들어서서 기척도 내지 못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데 젊은 스님 하나가 서원에서 나와 올라오셨다.

얼른 카메라에서 손을 떼고 두손을 모아 합장을 드렸다.

스님도 합장을 하여 받으시더니 "초가을 경치 참 좋죠?" 라고 먼저 말을 붙이며 맑게 웃으신다.

" 좋구 말구요. 그래서 이렇게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 그런데 역광이라서 괜찮을까요?"

" 저는 역광촬영을 좋아해서 일부러 택했답니다. "

스님은 또 한번 나를 보고 맑게 웃어주시고는 산으로 향하는 길로 올라가셨다.

 

나는 촬영을 마치고 스님이 떠난 돌층계를 따라 올라갔다.

벌써 어디쯤 가셨는지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따라 나설걸...' 이런 후회도 들고 '산으로 가시는 길이라면 저하고 말벗이나 하면서 함께 으르시지요.'라고 잠시 지체시켰다가 같이 갈것을 ...하는 후회가 자꾸 들었다.

그 싱그러운 미소가 자꾸 눈 앞에 어른거리며 지워지질 않았다.

그러나 내가 포대능선까지 오르도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산책을 하려고 산으로 오르는것 같았는데...그렇다면 분명 다시 내려오실테고.

나는 포대능선 정상에 앉아 초가을 북한산을 카메라에 담으며 스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스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 그 인연이란게 이런 것인가?

전생에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다가 다시 이렇게 스쳐 지나갔을까?

불가에서는 지나가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억겹의 인연이 있어 만난다는데...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은 몇이나 될까? 셀 수나 있을까?

한 해 두 해 나이가 더해지는 것 만큼 인연도 쌓여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내 생은 끝이 날까?

그러나 그 끈들을 모두 붙잡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떠나는 인연도, 잡을 수 없는 인연도, 마음은 늘 함께이다.

이렇게 태생부터 차원이 달라 만날 수 없는 인연도 있다는걸 알았다.

 

그러나 이제 인연을 쌓고 만들기보다 인연이 다하여 떠나가는 것을 어쩌리...

 

 

 

- 尹馝粒 사진 / 글.

 

 

 

 

 

 

望月寺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39년(선덕여왕 8) 해호(海浩)가 창건하였으며, 망월사라고 부르게 된 고사가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해호를 존경하여 측근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으나, 해호는 사양하고 홀로 이 산중에 암자를 지어 나라를 위해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당시 해호가 머물렀던 동대(東臺)의 옛 산성 이름이 망월성(望月城)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성 이름을 따서 망월사라 하였다.

신라 말기 경순왕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했다고 하며,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절을 중창하였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14차례의 병화와 전란으로 절이 황폐해졌다가 1691년(숙종 17) 동계(東溪)가 중건하였다.

그 뒤 영월(暎月)이 수십 년 동안을 이 절에 머물면서 1779년(정조 3)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 선월당을 옛 영산전(靈山殿)터로 이전하였으며, 1818년(순조 18) 칠성각을 신축하고 1827년 절 전체를 중수하였다.

1880년(고종 17) 완송(玩松)이 중건하였고,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하였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하였고, 1901년(광무 5) 인파가 큰방을 보수하였다.

1906년 회광(晦光)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하였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하였다.1

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건물을 지었다.

1972년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상층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하층을 선실로 사용하는 석조전(石造殿)을 중심으로 영산전 · 칠성각 · 낙가암 · 범종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망월사혜거국사부도를 비롯하여, 1793년에 건립한 태흘(泰屹)의 천봉탑(天峰塔), 1796년에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 한 천봉탑비(天峰塔碑)가 있다.

이 밖에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塔陀羅尼板) 1매, 청장(淸將)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柱) 4매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절에서 300m 떨어진 곳에 광법암(廣法庵)이 있다.

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누각이었던 것을 1965년 춘성이 현 위치로 옮겨 광법암이라 하였다.

이 절은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원(禪院)으로서 매우 전통이 깊고, 근대의 고승인 만공(滿空) · 한암(漢巖) · 성월(惺月) 등이 후학들에게 선을 가르쳤으며, 많은 선객(禪客)들이 수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