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young day, memory of Sandy Kim
우리 젊었던 날, 샌디와의 추억
2018년 10월 12일 저녁에 방송된 KBS1 모 교양 프로에서1세대 혼혈 가수로 활약했던 샌디김이 나와서 눈물어린 감동을 주었다며 인터넷에 떠돌고 회자되며 그의 한국에서의 불우했던 성장이 재조명되며 세간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나는 잊었던 젊은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샌디김과의 추억을 더듬어 필력하려 한다
'70년대 초 가수로 반짝 이름을 날렸던 샌디 김은 강원도 양구 출신이다.
그는 생부가 누군지 모른다. 해방이 되고 2년 뒤인 1947년, 어머니는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22살 어머니는 그를 임신하고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구 수성못에 몸을 던질 때마다 사람들이 구해냈다. 그렇게 생명은 건졌지만 그녀의 삶을 건져준 건 아니었다. 당시 미혼모가 검은 혼혈아를 낳고 살 수 있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보호막'이 필요했던 어머니는 산골에 사는 22살이나 나이 많은 홀아비와 결혼을 했다
심성이 고운 그 아버지는 그 아이를 하늘에서 내려준 복덩어리라 하여"福天"이라 이름 짓고 세상에 버림 받을 처지의 모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7살되던해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구를 떠나 강원도 양구로 이사를 했다.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잔인한 시절'이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는 남의집 허드렛일, 군인들 빨래, 그리고 노점에서 국화빵을 구어팔았고 아버지는 고물수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요즘은 국제 결혼도 일반화되었고 따라서 다문화 가정도 일반화되었지만 전설같은 이야기로 반세기 전만해도 여성의 정조는 목숨과도 같았고 혼혈들은 모두 색안경을 쓰고 놀림의 대상이 되던 때였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살던 처녀가 검은 피부의 아이를 낳았고, 사생아로 태어난 혼혈아는 세상에 버림받은 아이로 좌절해버리기가 쉽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않고 '깜둥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면서 친구들에게 얻어맞지 않을려고 25리나 떨어진 당수도장에 다니면서 주먹 단련을 하고 설움이 북받칠때는 방황하며 홀로 노래를 부르며 서러움을 달래기도 했다.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피부색깔이 다르다고 마땅히 받아주는 데가없자 건달처럼 떠돌기도했다. 늘 외톨이였던 그는 타고난 목청으로 이마을 저마을 노래자랑 콩쿠르에 나가 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면서 강원대학까지 졸업을 했다.
그후 프로 권투에 데뷔했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명성은 오래가지 않고 곧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연예잡지에서 배우 이낙훈씨의 기사를접하게 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는 기사를 읽고는 무작정 이낙훈씨를 찾아갔다.
이낙훈씨에게 이곳에서는 살수가 없으니 미국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이씨는 그에게 외모가 독특하니 탤런트시험에 응시해보라고 권유한다.
그리하여 69년 탤런트시험에 붙어 연속극 수사반장과 그외 외모에 부합되는 특정배역에 출연하는 연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T.B.C. (당시 동양방송.)에 텔런트로 들어가면서 연기력은 미흡했지만 검은 피부를 가진 독특한 외모 덕분에 특별한 역만 맡아서 이름이 제법 알려졌다. 중견배우 한진희씨가 그의 동기다.
'검은 미소' '수사반장' '추적' '113 수사본부' 등 다수의 TV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연기생활을 하면서 다음해 작곡가 김학송을 만난다.
김학송은 복천의 그간의 살아온 과정을 듣고는 예명을 -모래알- '샌디 김'이라하여1970년 박일명 작詩 '잃어버린 고향'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준다. 어릴 적 동네 콩쿠르를 휩쓸던 노래 실력을 살려 가수로의 길을 걷게된 것이다.
정확한 가사와 곡은 기억나지 않지만 레코드도 몇 장냈고 드라마에서 노래 실력도 선보이기 되었다.
샌디김은 혼혈 1세대 가수로 등장 하게된 것이다. 윤수일 박일준 인순이 혼혈출신들이 연예계에 진출하기 훨씬 전이다.
내가 그를 만났을때는 그가 가수로 데뷔하여 한창 이름을 날릴 때였다.
그는 어느 날, 내가 군복무를 하는 비행장으로 위문공연을 왔고 그가 노래를 할때 나는 그를 홍보용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가까워졌다.
내가 외출을 나와서 그와 만났고 그후 전화를 자주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거의 통화가 되질 않았다
언제나 나이 지긋한 그의 의붓아버지가 받을 뿐이었다
늘 가난하긴 마찬가지였고 한국사회는 혼혈인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질 않았다
그는 미국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을 떠나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81년 아는 兄의 도움으로 마침내 오래전 부터 원하던 미국땅에 발을 딛게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정착을 하면서 술과 마약에 빠져들지 않고 이런 저런 일을 열심히했다.
'얼굴 색깔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맘이 편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83년 미군에 입대하여 복무후 2년 뒤 영주권을 받고
1986년 원주 출신인 정 제니퍼씨와 결혼해 두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리고 87년 드디어 어머니를 모셔 갔다.
이상은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들이고 지금은 궂은일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성실함에 흑인들 뿐 아니라 미국사회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주 한인들로 부터도 좋은 평을 받으며 미국 LA 코리아타운 중심가인
르만디와 올림픽가사거리. 쇼핑 플라자에 B&B 보안회사 대표이자 경비업체를 차려서 현재 한인 교포 30명과 함께 코리아타운 쇼핑몰 경비와 아파트 전문 인력 파견 일을 하고 있다. 회사가 안정세를 이루면서 LA다운타운에 개인아파트도 마련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변해도너무 많이 변했다. 길에서 만나도 모르고 그저 스쳐 지나갈것만 같다.나는 옛날의 사진첩을 꺼내서 펼쳐보며 샌디의 사진을 찾아냈다흑백사진 속에는 새파랗게 젊은 나와 샌디가 손을 잡고 해맑게 마주보며 웃고있다.아! 우리의 청춘은 그토록 잔인하게 가난하고 고달펐지만 싱싱하게 밝고 건강했었다.47년생이니 그의 나이도 어느덧 일흔이 넘었다.나는 그가 건강하게 미국에서 살다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항상 염원하는 강원도 양구로 다시 돌아와 편안히 여생을 마치길 바란다.
- 샌디 와의 추억을 회고하며 윤필립(尹馝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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