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Rainy day. 백야현상일때는 밤이 되어도 이렇게 어둡지를 않습니다.
로맹 가리 박정대
바람이 분다, 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두 개의 중국인형이 있는 되 마고에 앉아 그대를 생각했어
저녁이었는데, 적막에 관한 아주 길고 느린 필름처럼 파리의 석양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석양이 오다니!
나는 환각과 착각 속에서 백야를 봤어
결전의 날, 마침내 나는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그대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전의 날은 왜 또 그렇게 쓸쓸한 적막처럼 내게로 불어왔던 것인지
저녁이었는데, 그대 떠나고 없는 거리는 붐비는 상념처럼 쉽게 어두워지지 않았어
이상하게도 어두워지지 않던 밤 9시의 뤼 뒤 바크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 속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을 서성거리다가 어느새 나는 두 개의 중국인형에 당도했던 거야
저녁이었는데, 내가 마시는 크로넨버그 1664 맥주의 거품처럼 파리의 밤은 도대체 어두워지지 않았어
낮에 다녀온 진 세버그의 무덤에 그대 대신 짧은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왔지
그녀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잘 생각나지 않았어
고독이 완성된다면 그건 바로 무덤에서일 거야
두 겹의 삶이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곳도 끝내 그곳이겠지
저녁이었는데, 나는 유령처럼 두 개의 중국인형 카페에 앉아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당의 종루를 바라보며
구원받지 못할 영혼처럼 술을 마셨지
죽음 이후에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한잔 마실 수 있는 술집이 있다면 기꺼이 나는 그 쪽으로 가겠어!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것이다
닫혀 있던 시간의 창문을 열면 고독한 그대 눈동자의 별빛들이 보여
떠도는 별들, 메마른 생의 대지를 다 읽으며 지나온 그대의 쓸쓸한 눈빛
저녁이었는데, 그대가 벗어놓고 떠나버린 허름한 대지, 헐렁한 대기 속에서 두 개의 중국인형처럼
나는 두 개의 상념에 잠겨 있었어
육체의 고통, 육체의 몽상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등의 불꽃들이 뛰는데, 뛰어오르는데 내가 찾아 헤매는 시냇물 같은 영혼은 어디에 가서 여치들하고나 놀고 있는 것인지
저녁이었는데, 바라보던 풍경에서 문득 시선을 거둬 오래도록 그대 눈동자를 바라보는 건 지금 그곳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풍경이 돋아나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별빛을 향해 담배를 피워 무는 건 그대에게 고백할 게 있다는 뜻이지
아, 나도 미친 듯이 고요하게 살고 싶어라!
저녁이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의 문턱에 잠시 상념을 걸어놓고 이렇게 담배 연기로 그대 이름의 시를 써본다
로맹 가리, 이런 게 시가 되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알아
시가 아니라면 넋두리겠지
이 세계의 내면을 향한 웅얼거림 같은 거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 삶에 대한, 아주 고요한, 한 잔의 적막 같은 거
그러니까 지금은 그대 고독이 키운 영혼의 늑대들 우우우 달빛의 울음소리를 내며 지상의 어깨 위로 귀환하고 있는 깊은 밤이야
두 개의 중국인형이 깊은 어둠을 내려다볼 때면 이곳에도 밝은 달이 뜨고 지구의 푸른 언덕 위를 넘어가는 두 개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리
바람이 분다, 우리는, 아무튼, 살아낸 것이다
- 박정대 시집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2007년)에서
박정대의 시를 몇 편 올리다 보니 그가 쓴 시의 마력에 빠져 그의 옛날 시집까지 구해서 보게 되고
그 중에서 또 몇 편을 올리게 되었다.
그의 시집을 읽다보면 이국의 알만한 지명과 사람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에게 Nostalgia같이 전해진다.
박정대의 시를 올리면서 시에 걸맞는 사진을 찾는데 나는 별로 고심하지 않았다.
유럽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촬영해 두었던 사진들을 꺼내어 시와 걸맞는다고 생각하면 포스팅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박정대시인이 L'etranger (이방인)이 되어 이곳, 저곳을 떠돌며 음악을 듣고, 시를 쓰면서
사진을 또한 찍었다면 얼마나 더 적격이었을까?...
그러나 박정대의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리며 마치 한사람이 작업한것 같이 아무런 어색함을 나자신도 느끼지 못했다.
박정대의 시와 내가 찍은 사진은 무척이나 그 곳의 정서를 잘 찿아내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애써 생각한다.
그러나...많은 분들이 철없이 사대주의 사상의 잔재가 남은 서툰 짓거리의 창작인들이라고 나무랄것 같은 걱정도 앞선다.이해하시기를... 동양의 얼굴빛 노랗고 눈이 외겹진 남자들이 유럽의 정취를 그만큼 소화해 내기도 쉽지 안찮은가?
그것을 고독한 사람들이 떠돌며 고민하다가 표출해낸 액기스로 봐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참고 -------------------------------------------------------------------------------------------------------------------------
출생 / 1914년 05월 08일
데뷔 / 1945년 소설 '유럽 교육'
대표작 /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경력 / 로스앤젤레스 주재 프랑스 총영사
진 세버그 (Jean Seberg) 영화배우
출생 / 1938.11.13 미국 아이오와 마샬타운에서 태어나 1979.9.8, 약물과다로 사망(barbiturate overdose)
출신학교 / 아이오와 대학(Iowa University)
데뷔 /오토 플래밍거 감독의 대작 <잔 다르크 Saint Joan (1957)>
대표작 / * 후랑소아즈 사강의 소설을 영화한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 *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
결혼 /1962년 10월 16일 로맹 가리(Romain Gary)와 두 번째 결혼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영화 / Moment to Moment (애정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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