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에서 개를 데리고 기다리는 남자 이야기
충남 내판을 지나 충북 부용면(부강) 과 인접해 있던 연흥리에 살때 이야깁니다
제가 살던 집앞에는 포장이 안된,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한잔 타서 들고 거실 비슷한 공간에서 신작로를 바라보면
서울.부산가는 상.하행선 열차들이 가끔씩 서로 지나치는걸 볼수가있었고
오전10시쯤 되면 한 사나이가 큰 누렁개 한마리를 앞세워 걸어가는 모습도 볼수가 있었습니다
훌쩍 큰 키에 비쩍마른 몸매, 표정없는 얼굴
그러나 참 잘 생긴 용모였습니다
몇 번 사나이를 보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란 별명을 붙여 줬습니다
사나이는 휘적휘적 걷다가 제집앞을 돌아 들어오는 작은 다리에서 잠깐 멈춥니다
아마도 한참을 걷다 잠시 쉬어 가자는듯
늘 그시간 그장소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한동안 앉아 있다가 다시 부용면 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제가 청주 방송국을 다니는 코스는 부용면입니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방송국까지 한번에 가기에
부용면 버스정류장엘 가면 사나이가 개를 앞에 앉혀놓고 누군가를 무한정 기다리는
모습을 어김없이 볼수가 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그자리입니다
아침결 제집앞을 지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음 부터는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밤 막차 끓어지는 시간까지 늘 그렇습니다
사나이의 정체가 하도 궁금하여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약국을 하는 선배에게
넌즈시 물어 봤습니다
"저사람은 도대체 어디살며, 뭐하는 사람이며, 누굴 저토록 기다리나?" 하니 선배는
"집나간 아내를 기다리지." 합니다
아내가 왜 가출을 했을까? 저토록 허우대 멀쩡하고 예의도 바른듯 한데
무슨 말못할 사연이라도 있었는가? 재차 물으니 선배는 빙긋 웃으며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네."라고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더 궁금해 져서 선배에게 자초지종 이야기좀 해보라며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의 전말을 들었습니다
사나이의 집은 우리동네 연흥국민학교 뒷편에 있는 전답도 꽤나 되는 중농인데
군대가서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정신병자가 돼서 의가사 제대를 했답니다
그러자 집안에서는 대를 잇고자 여기저기 혼처를 구한다 뭐한다 노력들을 해보았지만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나이에게 선듯 혼처자리가 들어 올리가 만무였지요
그러자 집안어른들은 청주에 한 작부집을 찾아가서 한 여자를 데려오는데
여자에게는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얼마만큼의 재산을 주겠다 약속을 했고
작부집을 전전 하던 여자 역시 이기회에 애 하나 낳아주고 목돈이나 만지자는 결심으로
사나이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아내를 얻은 사나이는 눈만뜨면 여자를 찾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가도 문앞에서 기다리고, 밭에 나가 일이라도 할랴치면 호미든 뭐든 뺏어들고는
자신이 모두 해치워 버리면서 여자손엔 먼지 한 줌 묻지않게 배려를 했습니다
이러니 여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애당초 계약한대로 애 하나 낳아놓고 돈 좀 쥐고 떠날 결심으로 사나이를 받아 들였지만
날이 갈수록 그놈의 사랑이란 감정이 생겼더란 이야깁니다
그래서 여자는 사나이 집안 어른들에게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 그냥 혼례만 치르게 해달라>
이집 귀신이 되서 사나이와 열심히 살겠노라 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원한건 대를 이을 애 하나 뿐이였지 작부집 여잔 아니다 해서
냉정히 거절을 거듭했는데 여자는 어느날 사나이를 데리고 가출을 해버렸고
집안은 발칵 뒤집히면서 사나이를 찾아 나섰는데 여자는 뜻밖에
청주 우암동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일을 하며 사나이를 극진히 보살피고 있었더랍니다
집안 어른들은 즉각 여자와 사나이를 데리고 돌아 왔습니다
빨리 애나 하나 낳고 얼른 이 지방을 떠나라 협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여자는 어느날 작은 보따릴 하나 싸들고 몰래 집을 나오다가 사나이한테 발각이 났습니다
여자는 사나이에게 '잠깐 청주에 먹거리 사러 갔다 올테니 기다리라' 거짓말을 했고
사나이는 그런가보다 하고는 보내줬습니다
부용면 버스정류장으로 나온 여자는 보따릴 안고 한나절이나 울다가 결국 떠났다는 후일 담입니다
사나이는 아침이 되면 부인 마중하러 버스정류장으로 나갑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개의치 않습니다
장보러 갔다 온다 약속을 했으니 필경 돌아올것이라 믿고는 여자를 찾으러 늘 그렇게 다닙니다
선배로부터 전말을 듣고보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사나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몇 시차로 온대요?>
사나이는 그저 무표정으로 대꿀합니다
<그냥 온다구 했어요>
윗 글은 제가 소속되어 있는 카페지기이며 제 대학 선배인 Jazz Man (김명일)님의 글입니다.
대학4년때, 민주화운동을 앞장서려 대모에 참가했다가 붙들려 특전사로 월남전선까지 다녀온후
수많은 인생역정을 걸어온 그가 청주 M.B.C.방송국에서 음악프로를 진행할 당시 겪은 일을
썼다 합니다
선배는 자신이 지나온 일들을 무척 서정적이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글재주를 지녔는데
윗 글은 한 사내의 인생을 단편소설처럼 무척이나 잘 썼기에 제 블로그에 옮겨 실었습니다
특별히 틀린 맞춤법이나 문맥을 수정한 것외에는 될수록이면 그대로 원문을 옮기도록
노력하였습니다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