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국내여행

한려수도 여행기 5 / 통영 박경리기념관

Chris Yoon 2021. 10. 25. 04:22

통영 박경리기념관을 찾아서

 

"선생님, 그동안 너무 격조하셨습니다."

나는 들어서면서부터 선생의 調象 손을 덥썩 부여잡았다.

그녀의 손은 살아생전처럼 피가 흐르듯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박경리기념관은 원주의 박경리선생의 집을 설계했던 건축가 유춘수씨가 설계했다.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부터 현대문학을 읽은중에 손꼽는 책을 들라면 나는 거침없이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동리의 '驛馬'. 방영웅의 '분례기'.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을 손꼽는다.

선생은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많이 알려졌고 '토지'는 1969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전 5부 16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고 등장인물만 해도 어마어마하여 토지를 읽으며 인명사전까지 옆에 놓고 읽어야하는 대장편 대하소설이다.
그러나 나는 '토지'보다 '김약국의 딸들'을 더 좋아하며 여러번 읽었다.

그 이유는 선생의 고향 통영이 무대인 '김약국의 딸들'은 무척이나 통영을 잘 묘사했고 그 통영바닥에서 대대로 살아온 '김약국의 딸들'을 통해 한 가정, 더 나아가 그 집안 여인네들의 비극적 인생을 내 가족사처럼 읽어낼 수 있기때문이다.

 

 

 

 

 

 

지금도 가끔씩 꺼내어 읽는 '김약국의 딸들'.

'김약국의 딸들'은 워낙 원작이 뛰어나고 네 딸들의 운명이 드라마틱하여(사실 딸은 다섯인데 막내는 너무 어려서 이야기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 뭐니뭐니해도 제일 처음 만들어진 1963년작 '김약국의 딸들'을 나는 선연히 기억한다.

그때는 통영이 이렇게 변화한 시대도 아니어서 원작과 거의 무대가 흡사했다.

그때 출연했던 배우들도 당대 최고의 캐스팅이었고 다시 보고싶은 얼굴들이다.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생전의 박경리선생이 기거하며 원고를 쓰던 원주의 집, 방을 그대로 옮겨왔다한다.
소설을 쓰셨던 선생의 보기드문 詩인듯하다
이 시의 집도 원주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경리 문학관 ::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
전화: 055-650-2540

 

 


[Koen De Wolf]Cantil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