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시리즈 IV / 담양 소쇄원(瀟灑園) II
파란 하늘빛 한 점 없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대숲에선
암 고동색 띠를 두른
죽순이 불쑥 솟아있다
바람부는 날이면
온몸 부대끼며
울어 젖히는 댓잎의 애달픈 절규
바스락 제 몸 부서지는 소리
단아하게 자리 잡은 정자에선
선비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
흐르는 물속엔 고기가 춤을 춘다
석류꽃 흐드러진 꽃 그늘 아래
연인들의 사랑이 열매 맺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풀밭 위엔
거미가 정교한 집을 지었다
바윗돌 틈 이끼 사이로
고사리가 하늘 향해 맑게 웃고
쪼르르 다람쥐 내려와
물 한 모금, 하늘 한번
그대와 나
거친 마루 정자에 앉아
시름 벗어놓고 어색하게 웃어본다
감나무에 조롱조롱 맺혀있던
알사탕만한 열매만큼이나
자라난 풋풋한 그리움 그나마 날려보낸다
- 원장현님의 瀟灑園 에서 -
담양 소쇄원(瀟灑園)은
사적 제 304호로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된 한국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전체적인 면적은 1400여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조성된 건축물, 조경물은 상징적 체계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그안에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하며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하여 흐른다.
이런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때의 처사 양산보(1503-57)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낙향하여 은거지로 꾸민 정원이라고 하며 조영시기는 1520년대 후반과 153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중수하고 현재까지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원의 '소쇄'는 중국 송나라 사람 공치규가 쓴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뜻한다.
원장현님은 자연풍광 좋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이 고향이시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친숙해진 그의 대금소리는 그래서 자연을 닮아있다.
어린시절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60년대 말 여성극 극단에서 일하면서 그는 우리 민속악의 뿌리부터 하나하나 몸으로 체득하면서 70년대 초 당시 건강이 좋지 않던 한일섭에게 구음을 통해 학습한 것이 그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한다.
이후 그의 음악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면서 소리의 한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금소리는 단순한 악기소리가 아니라 소리를 뛰어넘는 자연 그 자체를 닮아 있다.
지금 듣는 연주곡 (고향 가는 길, 날개, 소쇄원)은 그의 창작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