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자작나무에 관한 詩

Chris Yoon 2021. 10. 10. 06:32

2012. 10. 25.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김왕노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니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너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자작나무           도종환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작나무            류시화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침묵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제 내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 내 말은
나에게 되돌아 울려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받지 못했다

 

 

 

 

 


자작나무 내 인생           정끝별

 


속 깊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멍을 완성해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자작나무 사랑법           이정자



자작나무 숲에는 키큰 나무 한 그루 우뚝 서있다
저 멀리 아득한 거리에 작은 나무 한 그루
대책없이 바라다볼 뿐인
가슴으로만 붙잡고 그리다가 하루 해 저물고
세월은 흘러 가늠할 수 없는
고독의 키만 키우는 나무 한 그루 있다
버려져서도 버리지 못하는 저 지극한 사랑법
거역할 수 없는 아름다운 유혹
그러나 순정의 시대는 끝났다








자작나무 숲              김상현



물은 자작나무 숲을 통해 하늘로 흐른다
나무들마다 펌프질을 해서 하늘의 목마름을 달래준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자작나무는 하늘의 별을 우러르며
더 높은 더 맑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귀를 세운다
모든 숲이 그러하듯 자작나무 숲도 새들의 보금자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몸을 곧추세운다
비탈에 서있는 자작나무는 산을 업고서도 제 할 일을 한다
거센 바람에도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다만
자작나무는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오직 한 자리에 서서
잎새에 이는 햇빛 무늬와 새 소리와 비나 눈 내리는 소리들을
나이테 속에 가지런히 묻어둘 뿐이다.








자작나무 숲길             강윤후



새치 같아 아니 흑판에
백묵으로 마구 그은 선들 같아
어느 땐 뼈다귀들처럼 보이기도 해
자작나무 숲 그것 때문에
겨울산이 더 검은지 몰라
오래 흩어졌던 길들이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룬 걸까 다 닳아빠지면
뼈다귀만 남는 걸까 중얼중얼
염불소리 들려
기도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게 뼈다귀마저 다 갈아마시면
어디로 가게 되지 반쯤 무너진 봉분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해
한 입 베어먹은 사과처럼 보이는 그 앞에서
가로막는 것의 외로움을 생각하는 중이야
햇살이 발등에서 차곡차곡
눈을 감고 있어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서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김훈도 ‘물드는 산 꿈꾸는 나무’라는 글에서 “아침햇살 속에서 자작나무의 빛은 튕기지만, 저녁햇살 속에서 자작나무의 빛은 스민다”고 자작나무를 평한다.
그리고 “오리나무 숲의 바람은 거친 저음으로 폭포처럼 흘러가고 자작나무 숲의 바람은 잘 정돈된 고음으로 흘러간다”고 적고 있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와 동아시아에 걸쳐 많은 곳에서 우주수(宇宙樹) 또는 세계수로 꼽는다.
하늘과 맞닿을 수 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 생각한 것이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정령이 깃들어 있어서 하얗게 빛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 나무를 귀히 여겼다.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드넓게 펼쳐진 개마고원과 북으로 솟구쳐 오른 백두에서 하늘에 닿는 자작나무는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키 크고 나뭇잎 떨어지는 이 나무의 상징은 흰색의 껍질이다.
사실은 검은색을 살짝 비추는 은백색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겉은 흰색이지만 그 나무의 껍질 안은 검은색인데, 껍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검은 부분은 기름이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기름이 없던 시절, 이 나무로 불을 밝혔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 나무가 젖어있어도 불을 피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자작나무다.
한자로는 백화(白樺)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백화로 이 나무를 호칭한다.
기름이 많아 불을 밝히는 이 나무의 특징은 결혼식으로도 연장된다. 결혼식의 첫 시작은 ‘화촉’을 밝히는 것인데, 자작나무로 불을 밝힌 데서 연유한 의식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자작나무를길조로 여겼는데 그 시원은 로마의 유괴혼에서 출발한다.
로마 건국 당시 여자가 없어 사비니 지역의 사람들을 불러 축제를 하면서 자작나무로 횃불을 만들어 불을 밝혀 부녀자들을 유괴한 것이다.

또 다른 설화 하나는 자작나무의 흰 껍질을 벗겨 깨끗하게 연애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화촉과 연서, 그리고 유괴혼 모두 남녀의 관계를 연결하는 데 자작나무가 크게 쓰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보 중에서 자작나무를 재료로 만든 유명한 보물이 하나 있다. 국보 제207호인 천마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천마도는 장니, 즉 말안장에서 말의 배를 덮어내려 배를 가리게 해주는 말다래다.
이와 함께 신라 왕관에 촘촘히 매달린 나뭇가지 모양의 금붙이도 자작나무를 상징하고 있단다. 이 정도면 신라 왕족은 자작나무를 무척 귀히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추운 북쪽에서만 자생한다. 한반도에서는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이 주로 자라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 등 몇 군데에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따라서 신라에는 자작나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왕권을 상징하는 금관과 왕이 타는 말의 말다래를 자작나무로 만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를 고고학자들은 신라와 기마민족의 무역 가능성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 아침 산책겸 명상을 하러 나가는 O.L.Park에도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제가 천천이 걷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물안개 피어나는 호수를 한 바퀴 돌아 마로니에가 줄 지어선 길을 지나서 향나무가 한 그루 선 들녘으로 나갔다가

야생화 군락지를 지나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마침내 아침 햇살이 피어 오릅니다

자작나무,... 은사시 나무라고도 한다지요

요즘에는 이 자작나무 숲에도 낙엽이 집니다

머지않아 가지가 앙상해지면 눈이 내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