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죽음에 관하여 - 오탁번

Chris Yoon 2021. 10. 10. 06:28

2012. 10. 13.

 

 

죽음에 관하여          오탁번


1
왼쪽 머리가
씀벅씀벅 쏙독새 울음을 울고
두통은 파도보다 높았다
나뭇가지 휘도록 눈이 내린 세모에
쉰아홉 고개를 넘다가 나는 넘어졌다

하루에 링거 주사 세 대씩 맞고
설날 아침엔 병실에서 떡국을 먹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가
첩자처럼 병실을 드나들었다

수술 받다가 내가 죽으면
눈물 흘기는 사람 참 많을까
나를 미워하던 사람도
비로소 저를 미워할까
나는 새벽마다 눈물지었다


2
두통이 가신 어느 날
예쁜 간호사가 링거 주사 갈아주면서
따듯한 손으로 내 팔뚝을 만지자
바지 속에서 문뜩 일어서는 뿌리!
나는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다

다시 태어난 남자가 된 듯
면도를 말끔히 하고
환자복 바지를 새로 달라고 했다
- 바다 하나 주세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다
- 바다 하나요
바지바지 말해도 바다바다가 되었다

언어 기능을 맡은 왼쪽 뇌신경에
순식간에 오류가 일어나서
환자복 바지가
푸른 바다로 변해 버렸다
아아 나는 파도에 휩쓸리는
갸울은 목숨이었다

시집『벙어리장갑』 문학사상사, 200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