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궁전 - Schönbrunn Palace(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궁전
Schönbrunn Palace
Wien (빈)을 영어로는 비엔나(Vienna), 체코어로는 비덴(Viden), 헝가리어로는 베치(Becs)라고 한다.
빈은 도나우江 상류에 있는 유럽의 고도(古都)로서, 수백년 동안 대제국의 수도였으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정치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지금도 중부 유럽에서 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빈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1273년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1918년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645년 동안 유럽의 절반을 지배했던 왕조. 유럽의 중세를 관통하고, 르네상스와 근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그 합스부르크 왕조의 번영과 쇠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알자스와 스위스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소영주였지만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국왕이 되었다.
그 찬연한 600년 영광이 한껏 담겨 있는 곳이 바로 합스부르크 왕궁이다.
합스부르크 왕궁 앞 뜰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오토 3세 때 ‘동쪽의 나라’라는 뜻의 독일어 ‘Osterriche’에서 비롯된 것이
오스트리아라는 국명이다.
11세기 경 스위스에 자그마한 산성을 쌓고 일대를 지배하던 소영주의 후손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부재하던 대공위 시대 독일의 국왕에 뽑히면서 시작된 것이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작이다.
그 합스부르크는 이후 645년 동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냈고,
오스트리아는 물론 독일과 체코, 폴란드와 헝가리를 아우르는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프부르크 왕궁
60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조의 정궁 역할을 했던 호프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가 성립된 13세기부터 1918년까지 줄곧 역대 왕들의 거처였던 호프부르크는,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영국의 버킹검과 함께 유럽 3대 왕궁으로 통한다.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숱한 왕들이 먹고 자고 마시고 죽어간 곳이다 보니 그 규모는 가히 세계 최고다.
무려 10개의 건물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왕들마다 자신이 집권하던 시기 새로운 양식의 건물을 추가해 짓다보니 다양한 건축 양식의 박물관이
되어버렸다. 10개 건물에 들어선 방의 개수만도 2600개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집무실과 국제 회의장이 이곳에 있다.
Wiener Saengerknaben (빈 소년 합창단)
호프부르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인 왕궁 예배당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
이름 그대로 왕과 그의 가족들이 미사를 보는 공간이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데는 ‘천상의 소리’ 빈 소년 합창단이 있어서 였다.
1498년 신성로마제국 막스밀리언 1세에 의해 왕궁 예배당의 성가대로 시작한 빈 소년 합창단은 원래 일반인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외부 공개가 일체 이뤄지지 않은, 오로지 합스부르크 왕과 그의 가족들만을 위한 존재였다.
그런 빈 소년 합창단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몰락 때문이다.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의 패배와 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성립된 후 빈 소년 합창단은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비로소 일반인들에게 소문으로만 듣던 그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게 된 것이다.
1924년부터 자구책으로 세계 연주여행을 시작한 이후 빈 소년 합창단은 합스부르크의 울타리를 벗어 전 세계적인 합창단이 된 것이다.
지금도 빈을 찾는 여행자들이 매주 일요일 왕궁 예배당 미사에 입장료를 주고 참례하는 것은 빈 소년 합창단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이다.
티켓 가격은 7, 15, 25, 35 유로이며 서서 보는 자리는 무료지만 오전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1957년 독일영화 Der Schonste Tag Meines Lebens <들장미>라는 영화가 있었다.
빈 소년 합창단의 생활과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였는데 물론 빈 소년 합창단이 모두 출연했었다
전쟁고아 소년을 데려다 보살펴 주던 대장간 할아버지가 소년의 뛰어난 노래부르는 능력을 알고 빈 소년 합창단에 입단시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소년들의 우정, 마리아 선생님데 대한 존경과 사랑, 질투, 화해,... 등을 아름답게 그렸는데 어린시절에 본 영화로는 최고의 감동을 받았던 영화였다.
프랑스에 베르사유 궁전이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쇤부른 궁전이 있다.
16세기부터 유럽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모든 것에서 경쟁을 해왔는데,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기엔 그런 경쟁이 궁전을 짓는 것에서도 드러났다.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를 동경하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미 1696년부터 지었던 쇤부른 궁전을 증개축해 오늘날의 쇤부른으로 만들었다.
루이 14세의 손자인 루이 16세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했으니 말하자면 루이 14세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사돈댁 어른인 셈인데 사돈댁 궁전을 능가하는 궁전을 세울 생각이었던 듯하다.
쉔부른 궁전을 말할때 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궁전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한다.
신성로마황제 카를 6세 때 합스부르크왕가의 남계(男繼)가끊어지는 위기에 상속법을 개정하여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제국을 승게한후, 그녀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계승전쟁을 벌인끝에 지위를 인정받고 남편과 공동통치를 했다.
그리하여 마리아테레지아가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베르사이유에 견줄 지금의 궁정을 만들었다.
마리아테레지아는 모두 16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부부 금실은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그중 막내딸은 프랑스 왕 루이 16세에게 시집을 갔다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사라진 우리가 잘 아는 마리 앙뜨와네트다.
글로리에테(Gloriette)
건물의 규모에서는 호프부르크에 뒤지고, 정원의 크기에서는 베르사유에 못미치지만 쇤부른은 예술적인 면에서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의 외관은 유럽의 그 어떤 궁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위용을 자랑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던 쇤부른 궁전은 1.7km2 에 달하는 광대한 정원이다
펼쳐져있는 정원 끝에는 쇤브룬 궁전과 일직선으로 마주보는 위치에서 넵튠 분수가 있으며,
언덕 위에 인상깊은 건축물이 하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글로리테(Gloriette)이다.
작은 영광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글로리테는 1747년에 프러시아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그리스 신전 양식의 건축물 이다.
궁전 맞은 편 언덕 위에 지어진 글로리에테(Gloriette)에 앉아서 쇤부른 궁전을 바라보면,
그 뒤로 펼쳐진 빈 시내와 함께 합스부르크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광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맞은 편 언덕 위에 지어진 글로리에테(Gloriette)에 앉아서 바라본 쇤부른 궁전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해서 글로리에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앉아서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를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들어서 있어서 마리아 테레지아와 같은 위치에서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거울의 방(Spiegelsaal)
궁전 내부는 모두 1441개의 방으로 돼 있는데, 그 중 현재는 45개의 방을 개방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인기를 끄는 방은 ‘거울의 방(Spiegelsaal)’이다.
이 방은 모차르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추억이 깃든 방이기도 하다.
1762년 6살이던 모차르트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대를 받아 처음 쇤부른 궁전에 들어간다.
여기서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피아노연주를 선보이고, 이내 마리아 테레지아의 무릎에서
1살 연상이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모차르트는 1770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16살의 나이에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시름에 잠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위스 산골의 작은 영주에서 시작해 유럽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와 강력한 권력을 동시에 구가했던
합스부르크 왕조. 자식을 희생시키는 정략 결혼을 통해 전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 문화의 근세와 근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막내 딸 마리 앙트아네트의 비참한 삶처럼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빈 역사 여행은 화려함과 찬란함을 만끽하면서도 그 위대한 역사 뒤에 숨겨진 권력의 어두움을
동시에 볼 수 있기도 하다.
넵튠의 샘(Neptune Well)
마지막으로 Schönbrunn Palace(쇤부른 궁전)에 있는 넵튠의 샘(Neptune Well)을 소개한다.
넵튠의 샘(Neptune Well)은 쇤부른 궁전에 있는 분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