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배우는 퇴장할 줄 모르고 - 강 정

Chris Yoon 2021. 10. 9. 19:16

 

 

 

 

배우는 퇴장할 줄 모르고       강 정

 

 

이제, 세상은 충분히 낯설어져 있다 배우인 나는 한번도 죽어보지 않았기에 무대가 곧 나의 무덤임을 안다

나의 대본은 없다 나는 나를 펼쳐 보고 모방할 뿐이다 조명이 입을 다문 침묵과 어둠의 한 귀퉁이, 나의 연기는 웅크림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하얗고 단단한 이빨로 팝콘을 씹으며 객석에 엉덩이를 내려놓을 뿐이다 조명이 입을 열어 싯누런 무대 위에 나를 뱉아 낸다 산다는 건 죽음의 결핍이야 죽음이 무언데? 나의 어둠을 되찾는 것 조명이 세상을 읽어 내리기 전의 밝음보다 짙은 세상의 중심, 혹은 전부 객석에는 작고 동그란 어둠들이 심어져 있다 그들은 조명 아래 나를 보지만 나는 어둠 속의 그들을 본다 밝음은 나의 탓이 아니다 조명이 들어오면 나는 항상 많은 걸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하지 않겠다 어떤 방향을 주시하도록 유도하지도 않겠다 어둠이 곧 모든 방향이므로 나는 나를 모방한다 그러나 하지 않겠다 나의 행위가 곧 나의 기록이므로 어둠 속에 불을 지른다는 걸 상상하지도 않겠다 불은 쉬이 꺼지고 어둠보다 짙은 잔해가 거기에는 남는다 막이 내리면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빈 팝콘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고 몇 번씩, 낯설어진 세상을 향해 부신 눈을 닦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