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Chris Yoon 2021. 10. 15. 10:58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김왕노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니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