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구월의 이틀 - 류시화
다시 찾아온 구월의 이틀 류시화
구월이 비에 젖은 얼굴로 찾아오면
내 마음은 멀리 간다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가장 먼 곳
오솔길이 비를 감추고 있는 곳 돌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곳
내 시는 그곳에서 오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다시
숲에서 보냈다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양치류는 몰라보게 자라고
뿌리보다 더 뒤엉킨 덩굴들
기억이 들뜨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는 바위들 그곳에
구월의 하루가 있었다 셀 수 없는 날들을
타야만 하는 불씨가 있었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가
그렇다, 나는 이곳을 떠나왔다 그렇게도 오래
나 혼자 모든 흐름이 정지했었다 다만
어디서 정지했는지 알 수 없었을 뿐
어느 날 밤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맑아서
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어떤 물결이 내 집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별들은 집 뒤 습지에서 밤을 지새고
그때는 생각들이 온통 내 삶을 지배했었다
뒤엉킨 뿌리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계절을 살았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나는 그곳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눈을 돌리기만 하면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비와 오솔길이
소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쐐기풀이
구름에게 손을 흔드는 곳, 한때 그곳에
얼음에 갇힌 시가 있었다 내 안에
불을 일으킨 단어들이 있었다
곤충들을 움직이게 하고
심장을 빨리 뛰게 하던 것이
구월의 끝에서 나비들은 침묵하고
별들은 흔들린다
그 구월의 이틀이 지난 뒤
비와 돌들의 입맞춤으로 파헤쳐 진 길 위에서
눈먼 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 뒤로 예언을 하고
곧 누군가 길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그곳에 적힌 시를 읽으리라
다시 얼음에 갇힌 시를
- photo :: Chris Yoon
- Poem :: 류시화의 제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중에서 <다시 찾아온 구월의 이틀>
- Music :: 영화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 O.S.T
이 곡,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을 들으면
광활한 로키산맥과 누런 가을 벌판을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말을 달리던 브래드 핏이 떠오른다.
영화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은
광할한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삼형제와 한 여자간의 사랑 이야기였다
가슴에 폭풍같은 바람을 안고 살아가는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Brad Pitt)과
그를 사랑했기에 고통스러웠던 그 가족들과 그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던
광활한 대지가 이 음악만 들으면 떠오른다.
이 곡의 작곡자 제임스 호너는 수십 편의 영화와 TV음악,
그리고 수많은 연주곡을 작곡한 그래미상 수상자이다
또한 누가 맡았어도 멋있었을 트리스탄의 역할을 허리웃에서 단역 단골배우,
주로 밉상 건달이었던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맡아서
가장 빛나게 잘 소화해낸 영화였다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이후 좋은 이미지의 배우로 대성하여
세기의 스타배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