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폼페이, 혹은 슬프지 않은 비극 - 유하

Chris Yoon 2021. 10. 14. 13:32

 

폼페이 유적지를 거닐었다
식은 용암에 묻혀 있는 그대를
생각했다, 철 지난 해수욕장의 풍경처럼
한바탕 들끓던 욕망이 지나간 자리
로마産 아가씨, 안토넬라의 노란 우산이
그 옛날 화신극장 쇼걸의 팬티처럼 아름다웠다
눈 파란 집정관의 딸을 그리며
들개처럼 질주하던 내 마음의 종로2가는 폐허였다
비극 시인의 집(j.Ⅷ n. 5)이 보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을 구상하다
불덩이를 맞이했으리라
열일곱 시절, 그때 난 화신극장에 앉아
두 손으로 폭발하는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을 만졌다
난 향락을 원했다 퇴폐를 원했다
화신극장은 나의 폼페이였다
비극 시인의 집이었다
식은 용암 속의 그대,
고통의 화석이여
무너진 화신극장의 돌기둥 앞에서 담담하게 인정한다
나는 이제 폐인이 된 것이다.
내 꿈의 번화가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리고 몇 개의 돌기둥으로 복원된 꿈의 유적지를
아직도 자신을 휴화산이라고 믿고 있는 베수비오처럼
그렇게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 폼페이, 혹은 슬프지 않은 비극   - 유하

 

 

 

 

몇 해전, 폼페이에 갔다가 충격적인 흔적들을 보고 돌아왔다.

그 시대의 노골적인 사랑의 흔적들이 재에 묻혀있다가

고스란히 발굴되어 생생하게 많은 관광객들에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나는 폼페이의 유적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수천년전 어느 사내가 찾아가던

길 위의 돌바닥에 새겨진 성기모양의 표지판을 보고

내부 밑바닥 깊숙이 꿈틀거리는 성욕을 느꼈다

그렇게 아로 새겨진 성기 모양의 표지판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말라'고

내 귀에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잠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내 발을 성기모양의 표지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성기모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골목길, 막다른 방, 그곳에는 숨가뿐 정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단순히 뜨거운 욕구를 채우려 이곳을 찾은것은 아니었으리

그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이곳을 찾아 왔을것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마라.

 

 

 

 

The Hidden Vall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