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1.2.3.4. - 권재효
가파도 加波島
가파도 1 - 긴급 생방송
오늘은 꼭
저 섬에 가 보리라
모슬포서 배타고 뜨거운
커피 한 잔 하노라면 닿을
지척의 섬
영등할망 시새움일까
두 번이나 뱃길 허락지 않던
오늘은 저 섬에 꼭 가 보리라
영등할망 또 변덕 부리는지
아침부터
수평선에 이는 수상한 구름
웅성거리는 대합실
초행길아라는 서울 손님과 나는
커피잔 부딪치며 영등할망께 빈다
제발 바람 재워줍서
그 간절함 통했을까
직원의 긴급 생방송
예정대로
배 출항합니다!
가파도 2 - 가파도 처녀
모슬포항 대합실
가파도 처녀에게 말을 건넨다.
무엇이 볼만 한가요, 저 섬엔?
사람덜이 볼만 하지마시.
어떤데요, 사람들이?
법 어서도 살
사람다븐 사람마시!
똑 부러지게 말하는 처녀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람다운 사람들이 산다는
가 . 파 . 도
오늘 그곳에 깃발 하나 펄럭이고 있다.
가파도 3 - 청보리 들녘
저 바람을 담아 갈까 보다.
청보리 들녘에서
천방지축 뛰노는
저 바람을 담아 갈까 보다.
소맷자락에도 담고
바짓가랭에도 담고
오월, 가파도의 바람 속엔
오할쯤의 청보리 내음과
삼할쯤의 갯내음과
또 이할쯤의 그리움이 섞여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돌담에 갇혀
멸떼처럼 팔딱거리는 바람
뭍에서 구경 온 이들
탄성을 지른다.
청보리 물결 하얗게 부셔지면
옷을 적시며 깔깔거리는 사람들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도
불평하는 이 없다.
가파도 4 - 하얗게 지나가는 바람
몇 년 전, 한 사내가 그 섬에 있었다.
온 섬 가득이
청보리가 일렁일 무렵이었다.
사내는 화폭에 청보리를 담았는데
암만해도 바람을 담지 못하겠다며
툴툴거렸다.
달빛 쏟아지는 청보리밭
갑자기 붓을 잡은 그의 손이 춤이 추었다.
청보리밭에 하얗게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온 몸으로 온 몸으로 그는 느끼고 있었다.
가파도는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에 속하는 섬.
동경 126°16′, 북위 33°10′에 위치한다.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지점인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가장 높은 곳은 높이 20m 정도이며,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적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