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가파도 1.2.3.4. - 권재효

Chris Yoon 2021. 10. 14. 11:58

가파도 加波島

 

 

 

 

가파도 1 - 긴급 생방송

 

오늘은 꼭

저 섬에 가 보리라

모슬포서 배타고 뜨거운

커피 한 잔 하노라면 닿을

지척의 섬

영등할망 시새움일까

두 번이나 뱃길 허락지 않던

오늘은 저 섬에 꼭 가 보리라

영등할망 또 변덕 부리는지

아침부터

수평선에 이는 수상한 구름

웅성거리는 대합실

초행길아라는 서울 손님과 나는

커피잔 부딪치며 영등할망께 빈다

제발 바람 재워줍서

그 간절함 통했을까

직원의 긴급 생방송

예정대로

배 출항합니다!

 

 

 

 

가파도 2 - 가파도 처녀

 

모슬포항 대합실

가파도 처녀에게 말을 건넨다.

무엇이 볼만 한가요, 저 섬엔?

사람덜이 볼만 하지마시.

어떤데요, 사람들이?

법 어서도 살

사람다븐 사람마시!

똑 부러지게 말하는 처녀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람다운 사람들이 산다는

가 . 파 . 도

오늘 그곳에 깃발 하나 펄럭이고 있다.

 

 

 

 

가파도 3 - 청보리 들녘

 

저 바람을 담아 갈까 보다.

청보리 들녘에서

천방지축 뛰노는

저 바람을 담아 갈까 보다.

소맷자락에도 담고

바짓가랭에도 담고

오월, 가파도의 바람 속엔

오할쯤의 청보리 내음과

삼할쯤의 갯내음과

또 이할쯤의 그리움이 섞여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돌담에 갇혀

멸떼처럼 팔딱거리는 바람

뭍에서 구경 온 이들

탄성을 지른다.

청보리 물결 하얗게 부셔지면

옷을 적시며 깔깔거리는 사람들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도

불평하는 이 없다.

 

 

 

 

가파도 4 - 하얗게 지나가는 바람

 

몇 년 전, 한 사내가 그 섬에 있었다.

온 섬 가득이

청보리가 일렁일 무렵이었다.

사내는 화폭에 청보리를 담았는데

암만해도 바람을 담지 못하겠다며

툴툴거렸다.

 

달빛 쏟아지는 청보리밭

갑자기 붓을 잡은 그의 손이 춤이 추었다.

청보리밭에 하얗게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온 몸으로 온 몸으로 그는 느끼고 있었다.

 

 

 

 

가파도는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에 속하는 섬.

동경 126°16′, 북위 33°10′에 위치한다.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지점인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가장 높은 곳은 높이 20m 정도이며,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적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