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간밤 꿈속에서 또 고래를 보았다 - 권재효
Chris Yoon
2021. 10. 14. 11:23
간 . 밤 . 꿈 . 속 . 에 . 서 . 또 . 고 . 래 . 를 . 보 . 았 . 다
바다로 가고싶어
누군가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다.
바다로 가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제주에선 어디서나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어디서나 시원스런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토록 내가 바다를 갈구한다는 것은
나는 바다로 가보았다
배를 타고 사흘 낮과 밤
바다와 살을 섞을 땐 더 황홀한 별빛이여
그러나 멈추지 않는 갈증
바다로 가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마치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애절하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바다로 가고 싶어, 이 말은
누군가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겐 아늑한 집이 있지
귀여운 아이들과 싹싹한 아내가 있지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뛰는 심장을 잃었지만
직장에선 인정을 받기도 한다
내겐 아무런 불평이 없다
무덤 속처럼 편안한 나의 일상이여!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그는
대체 누구이란 말인가?
벌집처럼 짜여진 아파트 창가에서
한 사나이가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다로 가고 싶어, 이 말은
그의 입에서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비명인지도 모르겠다
- 간밤 꿈속에서 또 고래를 보았다 - 권재효
- 2012년 울산문협 해양특집 작품집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