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구역 - 강신애
재개발구역 강신애
잔해가 된 동(棟)과 동 사이 밀려다닌다
착암기 소리에 등뼈가 수척해져서
바닐라 빛 태양 아래
허물어진 것들 다시 허무는 바람
시멘트 가루와 해진 비닐이 고양이 터럭처럼 흩날리는데
굴삭기들이 쉬고 있는 무인도
이건 꿈일까?
깨진 유리문 타넘어
펄쩍 뛰어 눌러보지만
그 번호가 있던 자리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우린 영역을 섬기는 짐승
쉽게 거처를 옮기는 구름처럼 가벼운 당신의
딱딱한 먹이가 없다
물을 붓고 혼잣말을 적시는 그림자가 없다
하양 검정 점박이의 눅눅함과 정연한 수염의 끈기를
꽃씨와 새들이 희롱하고
밤이면 대단지 아파트
그 많은 유리창 불빛 기억하는 눈알들
자꾸만 눈을 비빈다
빈 그릇과
부서진 난간에서 읊조린 꿈
샅샅이 핥으며
가림막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라고 있다
ㅡ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2, 8월호)에서
대한민국, 서울, 송파구, 잠실(蠶室).
송파구 잠실동에 있던 마을로서, 조선 초에 이곳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었던 데서 마을 이름은 유래되었다.
오래전에 한강물이 흐르면서 모래땅이 형성된 쓸모없는 땅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경작지였던 무우, 배추밭과 뽕밭은 아파트 대단지로 변하고 국제 쇼핑몰이 들어서고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타워빌딩이 섰다.
석촌호수와 몽촌토성이 최고의 자연환경을 이끌어올리며 전철역이 네개나 들어서는 살기좋은 동네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 서른아홉에 흘러 들어와서 일흔 중반을 훌쩍 넘기며 봄이면 소리없이 지는 벚꽃이 내 아파트 9층까지 날아오르고 몽촌토성의 해자와 석촌호수를 오가는 해오라기를 거실에서 내다보면서 시를 쓰고,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기분이 내키면 열쇠로 문을 잠그고 좀 더 먼곳으로 여행을 떠나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오는 긴 여행도 했다.
살기가 좋아지고 도시가 높은 빌딩들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오르며 매머드 빌딩숲이 형성되자 사람들은 아파트를 더 높이 올리고 가구수를 늘려 재산을 불리는 재건축을 하자는 술렁임이 일더니 급기야 조약을 내걸고 도장을 받으러 다니며 아파트전체가 시끄러워졌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내노라하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나와서 호텔의 대강당을 빌려 꿈같은 미래생활의 설계를 약속하며 브리핑했다. 그들은 끝내 몇년간에 걸쳐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여 도장을 모두 받아내고 재건축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이주비를 받아 각자 이주를 시작했다.
한 가구, 두 가구... 하루가 다르게 이주가 시작되자 평화롭던 동네는 금방 어수선하고 범죄가 일어날듯한 뒤숭숭한 동네로 변하며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제까지 손질하며 잘쓰던 가구나 멀쩡한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꼭 필요한 전자제품 몇개와 아파트 재건축 문서만 챙겨서 썰물이 빠져나가듯 빠져나갔다.
거의 빠져나간 동(棟)에 혼자 남아있기도 무서울정도로 괴괴하고 을시년스러웠다.
나는 이주비를 받아들고 근처에서는 어림도없는 전세값을 맞추어 가느라고 남한산성이 보이는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로 모든게 낯설고 불만족스러운 생활여건속에 또 몇 년을 살기로하고 이주를 했다.
이때만해도 3~4년만 어디서 지내다오면 돌아올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않았다. 4년이 지나도 아파트재건축 공사는 시작되지않았다.
몇번인가 재건축회의를 한다고 등기우편물로 통보가 왔다.
결정지어야할 사항을 투표로 결정짓기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코로나로 인해 장소를 임대할 수 없어 옛아파트 광장에서 회의를 가졌다.
그렇게 몇번인가 재건축회의를 열면서 시간이 지나고 해가 몇번 바뀌었다.
나도 옛아파트로 찾아가 내가 살던,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는 빈 동(棟)을 바라보며 투표를 하고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고 걷던 캐나다 단풍나무가 줄지어서있는 거리.
한때 통신사 작업으로 나무를 캐내었을때, 나는 송파구청까지 가서 항의를 하며 원상복구를 시켰었다.
그 길, 푸른 잎이 돋아나는 봄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특히 아름답던 길. 이제 큰길로 나오는 차들만 다니는 도시의 사잇길이 되었다.
잔해가 된 동(棟)과 동 사이.
시멘트 가루와 해진 비닐이 고양이 터럭처럼 흩날리는데 굴삭기들이 쉬고 있는 무인도같다.
아파트의 정원 구석구석 낮잠을 자며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동안 난관이 많았다.
공사를 하면서 옛부터 살기좋은 동네라서 땅을 파면 백제시대의 유물 조각들이 나왔다.
부동산신문에서는 그때마다 기사거리를 만들어 기사를 올리며 공사를 미루고 중단된다는 기사가 뜬금없이 올랐고, 할일없고 남의 말을 좋아하는 여인네들은 '후세들의 유산으로 땅을 보호하여 남겨놓자면서 최고의 고급 아파트의 꿈은 이미 물건너갔다'면서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달았다.
이런 사람들이 만일 자신들의 일이었다면 목숨을 내걸고 자신들의 집과 재산을 보호받기위해 목숨을 걸고 사생결단을 냈을것이다. 지금도 살고있는 아파트에 하자가 있으면 아파트값이 내려가니꺼 하자가있다는 말을하지말라면서 만일 말이 새어나간다면 가만두지않겠다면서 몇명이 조를 짜서 돌아다니며 으름짱을 놓고있다는 말을 들었다.
새삼 그 사람들의 인격과 비뚤어진 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알고 웃고 떠들며서 자신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않으려고 밤의 승냥이처럼 다니는 사람들... 세상은 자신이 쌓은 공덕만큼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때도 되었건만 왜 저모양들일까?
上/ 뉴욕 센트럴 파크. 下/ 서울 잠실 올림픽 공원과 재건축중인 진주아파트
뉴욕에서 자랑할 수 있는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다.
그것들은 이제 뉴욕을 대표할 수 있는 랜드마크일 뿐이다.
뉴욕의 자랑거리는 뉴욕의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 파크이다.
현재 대한민국 송파구 잠실의 몽촌토성에 있는 '올림픽공원'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이다.
도심 한가운데에 남은 허파같이 귀중한 푸른 녹지대공원이다.
게다가 몽촌토성이라는 백제의 유물들이 남아있고 올림픽을 기념하여 세계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이 현존하는 곳이다.
그 옆에 헤오라기와 백로가 날아다니던 내가 살던 집, 진주아파트.
진주아파트는 공사에 난관이 많은 재건축지역이다.
시공을 맡은 삼성과 현대건설중에 현대건설이 국내에서 부실건설업체로 낙인이 찍히며 거의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건축자제비가 올라 건설업계는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귀중한 경험과 덕망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잠실 진주아파트는 쉬지않고 위로, 위로 오르고있다.
모두들 아무 염려 마시길...
尹馝粒(윤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