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花詩 series 20 / 봄멀미

Chris Yoon 2021. 10. 13. 06:31

 

 

입술은 타고
몸은 떨리고
땀에 혼곤히 젖은 이마,

기다림도 지치면
병이 되는가,
몸살 앓는 봄밤은 길기만 하다.

기진타가 문득 정신이 들면
먼 산 계곡의 눈 녹는 소리,
어지러워라
눈부신 이 아침의 봄멀미.

밤새 地熱에 들뜬 山은
지천으로
열꽃을 피우고 있다.

 


오세영의 <진달래꽃>에서 발췌

 

 

 

 

지하철에서 내려 우이동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삼각산을 오르다가

백운대, 바로 고개 밑에서 나목(裸木)들의 더미 속 가녀린 진달래 한 그루가 역광에 낯 빛을 붉히며 꽃을 피운걸 본다

언젠가 백운대를 오르다 보았던 꽃. 그때 약속했었다. '내 다시 내년봄에 찾아오마'고

내 앞으로 몇 십년이나 이꽃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내 명(命)에 연신 셧터를 누른다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