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파르나스의 전설 Modigliani (모딜리아니)展 I
Amedeo Modigliani I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때'라고 대답한다.
그 중에서 누구의 그림을 보고싶냐고 묻는다면 거침없이 Amedeo Modigliani(모딜리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그의 生과 나의 生이 서로 많이 닮았듯, 그의 짧은 生속에 질척이며 깔려있는 그가 걸어온 길을 나역시 따라서 걸어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근현대 미술사는 반 고흐와 같이 지독한 가난으로 처절한 삶을 보낸 많은 젊은 작가들의 업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모딜리아니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고, 사후 거의 500배 이상 작품 값이 뛰어오르는 등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명성을 인정받은 화가이다.
그의 1917년 작품. 푸른 쿠션에 기대누운 누드( Reclining nude with Blue Cushion / 캔버스에 유채, 60 x 92 cm.)는 $ 118,000,000. 우리돈으로 환산하여1,298억원까지 거래되었다.
(2012년, 구입자는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러시아의 기업인이자 AS 모나코 FC 구단주).
모딜리아니는 가난과 궁핍 속에 죽었다. 일생에 단 한 번 개인전을 열었을 뿐이며, 끼니를 위해 레스토랑에 수많은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야 평판은 널리 알려졌고, 작품 가격은 엄청나게 뛰었다.
또한 그의 일생은 세 편의 영화, 한 편의 다큐멘터리, 아홉 개의 소설과 연극에서 다루어졌다.
플로렌스에 있는 모딜리아니의 여동생이 입양한 15개월 된 그의 딸 잔느(1918-84)가 성장하여 아버지의 바이오그라피 [Modigliani : Man and Myth]를 썼다.
나는 마음이 심란하고 일이 안풀리거나 처한 환경이 어려울때는 운명처럼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열병처럼 불타는 가슴을 안고 미술에 입단하려 하던 열일곱살때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그림인줄도 모른체.
훗날, 미술을 집어치우고 뉴욕으로 건너가 미친놈처럼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처음 원화로 만났다.
그리고 2000년이 되자 유럽으로 건너가 서양미술을 섭렵하고 다니며 좋아하는 작가들을의 작품을 찾아다니다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또 한번 만나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2008년에 고양시에 있는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2011년 2월 6일에 우리나라의 고궁, 덕수궁 석조전에서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이번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이제는 느긋하게 모딜리아니를 바라본다.
이제는 귀신도 보인다는 나이.
그의 그림만 보는게 아니라 그가 그 그림을 그릴적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며 어떤 환경에 처했었는지까지 조사하며 찬찬히 뜯어보고 간단하게나마 필력하려 한다
- 내일 계속됩니다-

Modigliani의 대형 자화상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