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花詩 series 9 /허홍구 春詩 3편

Chris Yoon 2021. 10. 12. 09:31

 

봄날은 간다

 


/ 허홍구

꽃망울 터지는 봄날

"선생님은 참 재밌고 젊어 보여요."

내 팔에 매달리는 꽃이 있다

스물 한 살 젊디젊은 여인

묵은 가지 겨드랑이 가렵더니 새 순 돋는다

아무래도 이번 봄에는

꽃밭에 넘어 질 것 같다

꼭, 넘어 질 것 같다



지매는 할매되고 /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대야 늑대야 /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섭지 않아 나는 이제 먹이감이 되지 못하거든"

이제는 더 이상 먹이감이 되지 못해 늑대가 무섭지 않다는 권여사와

아직도 늑대라며 큰소리치던 내가 늦은 밤까지 거나하게 취했지만

우리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날 권여사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아- 나는 아직도 늑대가 분명하다



그동안 거의 한 달여 써오던 花身 series.
추위가 채 물러가지도 않은 냉냉한 초봄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른 공원을 서성대며 이슬에 운동화를 적시며 뛰어다니고
꽃나무 아래 비를 맞은채 촬영을 강행하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쿨룩거리며

기침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에 약속이나 한듯이 이끌려나갔다가
밤이면 또 다시 고열에 시달리던 한달여가 생각납니다
평생 꽃 한 번 안찍다가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 지인들이

마치 올 해에 끝내고 내년에는 못 볼 꽃들처럼 성화를 대어 안하던 짓을 해봤습니다.
꽃만 찍기로는 너무 심심하고 무료하여 인체를 결합시켜 花身 series로 연재한 꽃 이야기.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며 고개돌려 창밖을보니
아, 꽃잎이 떨어져 날리듯 오늘도 봄 날이 갑니다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