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花詩 series 7 / 4월 - 한용국
Chris Yoon
2021. 10. 12. 09:16
2014. 3. 22.
애인과 섹스하다 돌아보니 사월이었다
여자는 할퀴거나 깨물기를 즐겨서
멍든 자리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오랜 집중이 요구되었던 체위들 사이로
폭설이 내리는 풍경이 삽입되었다가는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곤 했다
목련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데
애인은 몇 시 기차를 타고 떠나갔을까
열차표를 손에 쥐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보니 내나이 서른이었다
애인과 섹스만 했는데도 사월이 오고
방구석은 어느새 절벽이 되었고
책상과 침대가 까마득한 곳에 떠 있었다
누가 겨울 내내 우물을 파놓은 것일까
애인과 섹스한 것은 분명히 죄는 아닌데
그러면 내가 녹아 물이되어 흘러야지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달려들어와
나이는 뒷구녕으로 먹냐고 욕을했다
그래 누가 내 몸에 고운 흙을 채워다오
꼬불꼬불 꽃 한 송이라도 피워 올리게
애인과 섹스하지 않아도 사월이 왔을까
피도 눈물도 없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혁명도 없이
4월 / 한용국
그랬다. 내 서른살의 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었다
어느 화창하던 봄날, 애인과 섹스하는 꿈을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몽정을 하고나니 내 서른살은 지나갔었다
그때는 꽃이 피는줄도 몰랐었다
새벽골목을 달려나와 출근버스를 타고
하루종일 형광등 불빛아래 일을 하다보면 늦은 밤이었다
때로는 높은건물 위에서 몸을 날려 한 송이 지는 목련같이 바람에 몸을 날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