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us 소녀를 사랑한 천사 이야기
Circus 소녀를 사랑한 천사 이야기 윤필립
내 나이 일곱살 무렵
동네 개천에 천막을 치고 진을 치던 동춘서커스를 본 적이 있었어
황혼녁에 들리던 삐에로의 나팔소리
그 소리에 이끌려 할머니를 졸라 구경을 갔었지
바닥에 깔린 거적위에 앉아 숨 죽이며 곡예사들을 보았어
그때 나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거야
공중 그네를 타며 허공을 날아 다니다 건너편 그네로 건너 뛰고
누워서 공을 굴리며 허리를 꺾어 자신의 몸으로 원을 그리던 소녀
마치 하늘에 사는 천사 같았어
막간을 이용해 그 소녀는 자신의 사진을 팔러 다녔지
그러나 그 소녀가 내 앞으로 와서 사진을 내밀었을때
나는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숨까지 멈추는듯했지
돌아와서도 잠을 잘때 그 소녀가 자꾸 떠올랐어
무대 위에서 아코디언과 나팔소리에 맞춰 허리을 꺾어 몸을 접고
공 위에서 다리를 자신의 얼굴 양옆으로 가져다 모으고
배시시 웃는 얼굴이 밤마다 떠오르곤 했지
내나이 사십이 넘었을때
잠실 사거리 빈 터에 동춘 서커스가 들어왔어
나는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구경을 갔었지
썰렁한 천막안은 궁색스럽고 남루하기 이를데 없었지
살 찐 여자 곡예사가 짙은 화장을 하고 굵은 다리를 들어 올려 공을 굴리고 있었어
공중에선 비쩍 마른 삐에로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그네를 타고 있었고...
그때 어린 소녀 하나가 책받침을 가지고 우리 앞으로 왔어
타이즈위에 반짝거리는 짧은 치마를 입고
야윈 얼굴에 짙은 화장이 얼룩져서 측은해 보였어
그때 내 아들을 보니 다른곳을 보는척 하는데 그 소녀를 좋아하는것 같았어
나는 알고 있거든. 그 녀석이 아무리 숨기려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책받침을 받아들고 소녀에게 돈을 주었어
그리고 말했지 "몇 살이지?"
"일곱살요..." 그 소녀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지
"얘도 일곱살... 그럼 둘이 악수해."
그리고 내 아들의 손을 끌어다 서로 손을 잡게 해줬어
둘은 마지 못해하며 악수를 했는데 ...
... 그 날, 내 아들은 하루종일,
한 마리 새처럼 많은 이야길 지즐대며
기분이 좋은 얼굴이었어
<2012. 5.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