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寺 - 이용한
2014. 2. 22.
맙소寺 이용한
절로 날이 저물어
모텔 맙소寺를 찾아가는 길짐승 한 마리
눈에 비친 雪經이 그렁하다
눈이 없으면 눈물도 없었겠지
입도 없고 아랫도리도 없는
죽어서 난 佛像한 나무가 될 거야
눈이 내려 진창인 고랑을
짐승이 겨우 희미한 두발로 건넌다
승도 중도 아닌
인생과 즘생의 경계를 지나는 중이다
그에게 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직립보행이고
먹고 사는 게 공연한 만행이다
길 밖에 버린 무수한 뼈들이
살과 피를 발라낸 명백한 증거다
그러니 이번 세상에선 제발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짐승에게 사랑이란 肉食에 다름아닌
빠져서 깊어지지 않기를
저만치.... 불 켜진 맙소寺는
애당초 강물에 빠진 달 같은 것이다
서걱이는 한 잎의 화두이고
구천을 떠도는 물고기자리에 불과하다
그는 오래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린
걸려서 잘 안넘어가는 맙소寺를 꾸역꾸역 삼킨다
그윽~, 한 짐승의 신음소리 길게 울려퍼지는
이 적멸한 달밤에
우리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 맙소寺가 있다.
그 길에는 시인의 방황하는 육신이 있고 사랑을 잃고 떠도는 슬픈 영혼이 있다.
시인의 영혼과 육신은 쉽게 안주하지 못한다.
오직 힘든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기꺼이, 마치 운명처럼 그 길을 간다. 왜 가는가?
왜 하필 집도 절도 없는 정거장에서 시인은 쓰디쓴 사랑을 예감하는가.
윗 詩를 쓴 이용한 시인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1996년 다니던 잡지사를 때려치우고 오랜 방랑과 방황의 길로 들어선 이래 바람의 자취를 따라 구름의 발자국 같은 것들을 끼적거리거나 헐겁고 희박한 것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10여 년 전 더는 출근하지 않는 인생을 택했고, 이제껏 정처 없는 시간의 유목민으로 살았다.
누군가는 ‘길 위의 시인’이란 명찰을 달아주었지만, 사실은 ‘맙소寺’와 ‘초승달 카페’를 찾아 떠도는
길짐승에 더 가깝다.
가끔은 ‘붉은여행가동맹’의 오랜 동지들과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이 여행하며,
이따금 ‘구름과연어 혹은우기의여인숙’에서 기약 없이 투숙한다.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안녕, 후두둑 씨≫ ≪정신은 아프다≫ 여행에세이 ≪은밀한 여행≫ 문화기행서 ≪사라져 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장이≫ ≪꾼≫ ≪옛집 기행≫ ≪이색마을 이색기행≫ ≪사라져 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등을 펴냈다.